서로 기대기
Posted 2016. 1. 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사무실 앞 모락산은 4백 미터가 채 안 되는 아담한 산인데, 창가에 서서 바라만 보다가
어느날 문득 오르내리기 시작한 게 어언 십 년 가까이 되어 가니 주말에 다니는 6백 미터대의
집앞 검단산이나 건너편 예봉산보다도 많이 다녔다. 점심 때 한 시간 안짝에 다녀와야 해서
정상까진 가끔 가고, 보통은 사인암까지 갔다가 내려오는데, 사인암에서 정상까진 10여분
거리의 평탄한 길이니 숨이 차 오르는 오르막길은 거의 지나다니는 셈이다.
등산로 계단을 오르다 보면 반듯한 나무들 사이로 소나무 한 그루가 옆으로 거의 2, 30도가
될까 말까한 아슬아슬한 각도로 누워 있는 게 보인다. 중간중간 가지치기만 하고 신통하게도
죽지 않고, 베이지도 않고 살아 남았는데, 하긴 바위틈이나 절벽에서도 고고(孤高)하게
잘 자라는 소나무니 이 정도야 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것 같다.
위태위태해 보이는 소나무 아래에 어느날부터인지 마치 지게 지팡이처럼 보이는 나무
지지대 하나가 생겼다. 아마 지나다니던 등산객 중에 마음씨 여린 이가 안돼 보였는지 주위에
있던 나뭇가지 하나를 골라 더 이상 쓰러지지 않도록 받쳐놓은 모양새다. 낙엽들 사이로
땅을 파서 묻고, 윗쪽은 Y자 모양으로 잘라서 소나무가 의지하도록 다듬어 놓았다.
휘어지긴 했어도 그래도 키가 저보다 훨씬 크고 굵고 무거운 산중 소나무인데, 받침대
노릇을 하는 지팡이는 턱 없이 가늘고 약해 보여 저게 과연 부러지거나 무너지지 않고 잘
버텨줄 수 있을지 안스러워 보였는데, 기특하게도 몇 달이 지나도록 꿋꿋하게 버티면서
건재(健在)를 과시하며 해를 넘기게 됐다.
몇 달을 그냥 바라만 보고 지나치다가 연말에 잠시 오르던 길을 멈추고 가까이 가 봤다.
멀리서 볼 땐 몰랐는데, 나무 지팡이는 Y자 양쪽을 잔뜩 소나무에 붙이고 있는 게 아니었다.
한쪽은 맞붙어서 온몸으로 죽어라고 무거움을 받아내면서도, 다른 한쪽은 마치 돌담의 벌어진
틈새마냥 숨쉴 공간이라도 되는 듯이 조금 벌어져 있으면서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이 소나무가 휘어졌지만 쓰러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 게 꼭 이 나무 지팡이 덕은 아닐
것이다. 소나무 자체의 강인한 생명력과 탄성(彈性)이 이까짓 지팡이에 의지하지 않더라도
능히 버틸 수 있는 힘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둘이 어울려 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게
보기 좋았다. 휘어졌지만 쓰러지지 않는 소나무에게서, 또 때론 별 거 아닐지 모르지만
위태해 보이는 나무를 받쳐주는 지팡이에게서 조화와 균형을 배운다.
'I'm wandering > 동네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해맞이 (2) | 2016.01.04 |
---|---|
앞뒷태가 이렇게 다르구나 (2) | 2016.01.02 |
길치 인정 (2) | 2015.12.14 |
눈 모자 푹 뒤집어쓴 배추밭 (2) | 2015.12.11 |
이상한 농구 (2) | 2015.12.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