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 은각사의 대나무
Posted 2016. 5. 17.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Oisii Japan
가끔 우리나라 남도의 고즈넉한 절 구경을 하다 보면 절간이 자리 잡고 있는 풍수에 놀라고, 주변 풍경들과 자연스레 하나돼 있는 모습에 일종의 경이감을 느끼곤 한다. 꼭 오래 됐다거나 규모가 큰 데서 오는 건 아니고, 들어서는 순간부터 경내를 거니는 동안 이질적으로 느껴지는 게 별로 없을 때 이런 아스라한 느낌을 크게 받는 것 같다. 오백년이 넘은 교토 은각사에서도 경내에 들어가서 나오는 순간까지 내내 이런 경이(splendor
구석구석 요소요소에 스민 것들에 찬탄하는 가운데 꼭 부드러운 것만이 아닌 뭔가 힘이 느껴지곤 했는데, 대나무들에서 그런 인상을 받게 된 것 같다. 우후죽순을 반복하며 장대처럼 솟아올라 주위에 넉넉한 그늘을 선사하는 대나무 군집은 물론이려니와 돌 계단 울타리로 세워 놓은 대나무 목책(木柵)들은 자칫 적막하기만 했을 이 절간에 생동감과 더불어 어떤 질서를 더해 주는 것 같았다.
연못을 지나는 돌다리 양쪽에도 대나무로 목책을 세워 놓았는데, 자른 지 얼마 안 됐는지 싱싱해 보였다. 물가에 세운 목책은 안전을 위해서라도 자주 보수하는 모양이다. 그와는 달리 기둥 삼은 대나무는 오래돼 보였는데, 절약과 재활용의 미덕을 살리며 신구의 조화를 보여주려 했나 보다.^^ 이중삼중으로 묶고 쪼매고 당기고 덧씌운 게 불여(不
꼿꼿한 게 특장점이지만, 온통 직선이기만 하면 재미 없다는 걸 아는 듯, 대나무를 휘어 굽혀 놓은 대목도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휘어져서 힘을 보탤 뿐만 아니라 미적 감각도 살리고, 못 하나 박지 않고 서로 어울리고 의존하는 게 꽤나 인상적이었다. 어법엔 안 맞지만 interdependencing이라 쓰면서 굳이 ing를 붙이고 싶었다.^^ 아마 여길 지나는 이들은 돌다리보다 대나무 목책에 더 의지하고 마음 든든해 하지 않았을까.^^
딛거나 밟고 지나진 않아도 장식용으로 주변을 돌로 쌓고 적당한 길이로 대나무를 열 맞춰 놓으니 흡사 뱀부 팬 플루트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산에 다니다 보면 종종 약수터 물 받는 데를 대나무관으로 이어 놓은 곳들이 있는데, 산에서 흐르는 샘물에 대나무가 더해져서 청량한 느낌을 주곤 했다. 먹는 물도 아니고, 딛지도 않는 장식용이었지만, 눈길을 끌기엔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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