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는 바위, 들이대는 바위
Posted 2017. 4. 1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십년을 다닌 길인데도 새삼 여기에 이런 게 있었나 하는 풍경들이 있다. 점심 때 모락산 사인암
올라가는 경사진 길은 전엔 옆을 돌아보지 않고 내쳐 올라가곤 했는데, 겨우내 슬슬 다니다 보니
다리 힘이 빠지고 숨이 차 올라 자꾸 옆을 두리번거리게 만든다. 덕분에 나무 계단과 로프로 만들어
놓은 등산로에서 옆으로 20-30미터 떨어진 큰 바위 위에서 서로 밀당하는 듯한 모양을 하고 있는
바위들이 눈에 띄었다.
잠시 등산로를 벗어나 가까이 가 보기로 했다. 경사진데다가 길이 나있지 않고 낙엽더미들만
쌓여 있어 미끄럽기도 했지만, 바위 하나가 반은 아래 있는 큰 바위에 몸을 누이고, 다른 쪽 반은
허공에 들린 채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다행히 걸친 쪽이 조금 커서 균형 잡기엔 큰 문제가
없어 보였는데, 왼쪽에서 그보다 작은 녀석이 겁도 없이 낑낑대면서 마치 밀어내려 하는 듯한
포즈를 취하고 있었다.
재밌는 모양새로다 하면서 한두 걸음씩 옮겨 가며 좀 더 바라보노라니 각도에 따라 주도권을
쥔 바위가 그때 그때 달라보였다. 어떻게 보면 작은 녀석이 큰 놈을 밀어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큰 놈이 작은 녀석의 도발을 용납치 않고 마치 포크레인으로 들어내 던지려는 듯이
들이대는 것처럼도 보였다. 어쩌면 저 바위들이 보이고 있는 틈새는 이런 씨름 때문에 생긴
건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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