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금야금 읽기 좋은 책 <랩걸>
Posted 2020. 4. 30.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
한 권을 붙잡고 완독하기보다는 이 책 저 책 왔다갔다 하면서 여기 조금 저기 조금씩 보는 독서에 익숙한데, 집콕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오랜만에 몇 권을 완독하는 즐거움을 맛봤다. 그 중 『배움의 발견 Educated』(3/5/20)과 『랩걸 Lab Girl』은 흥미롭게도 여성, 미국, 학자, 자전적 이야기에 요즘 트렌드와는 달리 비교적 두꺼운 책들이었다. 랩걸은 번역돼 나온 지 3년 됐는데, 첫 부분만 읽고 심심해 보여 꽂아두었다가 이번에 야금야금 다 읽었다.
지구물리학과 식물학 등이 결합한 고생물과학자 호프 자런(Hope Jahren)은 노르웨이에서 미네소타(북유럽과 북미란 공통점이 있다)로 이주한 사람들 특유의 강인함, 과묵함, 꾸준함 같은 성품 또는 인간성을 자신의 학문세계에 그대로 반영해 독자들의 공감과 경탄을 자아낸다. 뿌리와 이파리, 나무와 옹이, 꽃과 열매란 단출한 파트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연구하고 실험하는 게 전부인듯한 자연과학자의 라이프스타일과 성장과정은 단순하지만 일관성이 느껴졌다.
자신의 성장과정 이야기를 하다가 식물의 이모저모를 서술하는 교차 편집 스타일은 독자들에 따라 호불호가 있을 것 같은데, 내게는 좀 더 흥미롭게 읽혀졌다. 이런 건 "이야기 한 무더기와 책 사이의 다른 점"(405면 감사의 말)의 좋은 예인데, 작가의 잠재력과 가능성을 최고조로 끌어올린 편집자들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나도 편집자로 살아오면서 이런 편집 역량으로 필자나 저자를 격려하고 돋보이게 했는지 반성하게 해 주었다.
식구 중 가장 늦게 읽다 보니(아내도 재밌게 읽었다고 한다) 3년 전에 읽은 g가 군데군데 쳐 놓은 밑줄을 읽는 즐거움도 있었는데, 내가 새로 그은 색연필 밑줄과 별로 겹치지 않는 것도 흥미로웠다. 당연한 거지만, 서로 읽고 느끼고 수용하는 포인트가 다른데, 어느새 나보다 훨씬 많이 그리고 다양하게 읽고 생각하고 쓰고 있어 대견해 보이는 것도 뒤늦게 이 책을 읽으면서 갖게 된 소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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