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임
Posted 2020. 4. 8.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
지난 주말 오후 양재역에서 내려 커피샵을 찾아가다가 작은 공원을 지나가게 됐다.
아이들 놀이터 정도의 평범한 동네 공원이었는데, 한쪽에 옛날 교복 차림을 한 남학생이
벽에 숨어 뭔가를 바라보는 동상이 서 있었다. 원래는 맨얼굴이었을 텐데, 요 근래 누가
씌어준 것 같은 마스크를 착용하고 있는 게 특이해 보였다. 요즘 같은 때, 이심전심
동병상련으로 오가던 이들이 마음을 써준 모양이다.
가까이 가 보니, 조금 떨어진 데 있는 돌벤치에 역시 교복 차림의 머리를 딴 여학생이
다소곳이 앉아서 뭔가를 읽고 있는 동상이 보였다. 책은 아닌 것 같고, 남학생이 보낸 편지를
읽는 것 같기도 한데, 자세히 알 순 없다. 십중팔구 짝사랑하는 여학생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마음을 알리고픈 연서를 보냈고, 그걸 읽는 모습을 쿵쾅쿵쾅 뛰는 가슴을 달래며 숨어서
지켜보고 있는 것일 게다.
숨어서 바라보는 이나, 앉아서 읽는 이 둘 다 두근거리는 순간을 보내는 것 같았다.
그래선지 남학생 동상 옆엔 "설레임"이란 작품명이 붙어 있었다. 어쩌다가 이 한적한
공원이 이런 멋진 장소가 됐는지 알 순 없어도, 이쯤 되면 이 공원은 아이들의 놀이터를
넘어 연인들의 장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문득 나도 저런 설레는 시절이 있었지
싶은데, 가물가물하다(이렇게 서둘러 건조하게 끝내야 후환이 없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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