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없는 시대를 사는 요령
Posted 2020. 9. 2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잡동사니산에 가는 길에 지나던 아파트 주차장 한 칸을 빠알간 가을 고추 두 판이 차지하고 있었다. 예부터 어른들은 햇볕 좋은 날이면 고추와 이불을 널거나 말리곤 했다. 이불은 베란다 창틀에 널면 되지만, 고추는 잘 말려 빻아서 김장할 때도 쓰고, 두고두고 반찬하고 찌개 끓일 때 요긴하게 쓰려면 이렇게 햇볕 좋은 날 바짝 말려야 한다. 베란다에서 해도 되지만, 그것 같고는 직성이 안 풀리는 노인분들은 습관처럼 집밖 너른 데서 직사광선을 맞게 해야 안심이 되나 보다.
햇볕이 좋은 낮시간대 동네 아파트 주차공간은 중간중간 빈 구역이 생기는데, 아무 데서나 말리지 않고, 이렇게 아직 빠지지 않은 양쪽 차들을 바람막이 삼은 걸 보면 고추 주인의 눈썰매가 상당해 보인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경험의 산물일 것이다.^^ 문득 어쩌면 이게 다 마당이 없는 시대가 되면서 생긴 신풍경이고 요령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집 마당에 펼쳐 말려야 할 걸 작은 공공장소에 펼쳐 놓았으니, 그리운 풍경인 동시에 살짝 어색한 광경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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