줌파 라히리의 얇은 책 두 권
Posted 2020. 10. 29.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오 헨리 상과 퓰리처 상을 수상한 인도계 여성작가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1967- )가 익숙한 영어가 아닌 새로 배운 이탈리어어로 쓴 산문집 『이 작은 책은 언제나 나보다 크다』(In Other Words)와 『책이 입은 옷』(The Clothing of Books)을 읽었다. 둘 다 2015년에 나왔는데, 150쪽, 100쪽 남짓한 작은 문고판인데다, 글이 좋아 앉은자리에서 술술 읽혀졌다. 라히리의 소설은 아직 읽은 게 없지만, 에세이로 볼 때 분명히 탁월한 작가일 거라는 느낌이 든다.
『이 작은 책은 ...』는 영어 소설로 필명을 얻은 작가가 이탈리아어로 글을 쓰게 된 이유와 구체적인 과정을 짧은 에세이들에 담고 있다. 아예 거처를 로마로 옮기기까지 하면서 스스로 영어로부터 추방 당하고 새로운 언어를 배워 익혀가면서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의 도전과 모험이 담담하면서도 흥미롭게 전개된다. 짧은 에세이 제목에 쓰이기도 한 '이 작은 책'은 작가가 이탈리아 말을 배울 때 사용하던 포켓 사전이다.
이탈리아어로 글을 쓸 때는 구속받고 제한받는데도 왜 더 자유롭다고 느끼는 걸까? 왜 불완전하고 빈약한 이 새로운 목소리에서 매력을 느끼는 걸까? 이렇게 부서지기 쉬운 피난처에서 노숙자나 다름없이 살기 위해 훌륭한 저택을 포기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창작이라는 관점에서 봤을 때 안정감만큼 위험한 것은 없기 때문이리라. (75쪽)
『책이 입은 옷』은 작가로서 출판사에서 디자이너를 통해 옷을 입혀 준 책 표지에 관한 생각과 느낌을 담은 짧은 에세이 모음인데, 나도 평소 독자와 편집자로서 표지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인지 많은 부분을 공감하면서 읽었다. 비슷한 문제의식에 쉽게 수긍할 수 있었고, 새롭게 배운 점도 많았다. 작가의 마음에 별로 들지 않고, 책 내용과도 별로 부합되지 않는 표지들이 난무하는 실태는 거기나 여기나 난무하는 것 같다. 작가가 예뻐 보이는 한국어판 표지들을 마음에 들어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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