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나에서의 한 달
Posted 2024. 8. 16. 00:00,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
풀리처상을 받은 리비아계 영국 작가 히샴 마타르(Hisham Matar)의 문고판 <시에나에서의 한 달 A Month in Siena>을 읽었다. 건축과 문학을 공부한 작가는 런던을 비롯해 여러 미술관에서 그림 보는 게 취미인데, 13-15C 시에나(이탈리아 중부 피렌체 아래 있는 도시)파 그림에 매료돼 이십여년간 방문을 고대하다가 실행에 옮겨 한 달 살이를 하게 된다.
히셤의 그림 보는 루틴은 특이해서, 훑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한 작품을 여러 날 몇 달에 걸쳐 오랜 시간 지켜보는 것이다. 말이 쉽지, 아마 이렇게 하라고 자리를 마련해 주어도 따라하지 못할 사람들이 대부분일 것이다(헨리 나우웬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가서 <탕자의 귀향>을 이렇게 봤다). 나도 그림 보는 패턴을 조금 바꿔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캄포 광장에 있는 푸블리코 궁전의 세 벽면에 걸린 암브로조 로렌체티의 프레스코화 <좋은 정치의 알레고리>를 중심으로 시에나파 화가들의 여러 작품에 대한 해설과, 도시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걸어다니는 도시 여행기는, 좋은 문장과 인상적인 대목들이 많아 읽는 내내 즐거웠고, 알지 못하던 도시 시에나도 기회가 되면 가 보고 싶게 만들었다.
언제나처럼 재빠르게 짙고 무거운 고독이 찾아왔다. 고독에게는 시간이 많다. 사람이 홀로 있으면 시간은 양쪽으로 창이 난 방이 되어, 한쪽으로는 과거를, 다른 쪽으로는 미래를 들여다보게 된다. 과거와 미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그러나 현재는 상상력을 압도한다. 쉬지도 지치지도 않는 이 진행성. (52쪽)
나는 이러저리 돌아다니며 도시가 깨어나 분주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몇 사람을 멀찍이서 따라다녀 보기도 했다. 이 이상하고 남부끄러운 행동을 나는 햔지인들이 시에나를 누비는 방법을 알아보고 그들의 일상을 일별하려는 거라고, 말하자면 현지인들을 따라 살아 보려는 거라고 스스로에게 설명했다.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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