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중산행 071611
Posted 2011. 7. 1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I'm a pedestrian어떻게 날씨가 내내 이럴 수 있을까. 미국에서 돌아온 다음날 새벽 짧은 산행을 한 이후엔
이렇다 산에 갈 타이밍을 잡지 못할 정도로 비가 자주 온다. 새벽에 일어나 부엌 베란다 쪽으로
예봉산 자락을 보노라면 한 주 내내 산꼭대기엔 구름이 덮여 있다. 테이블 마운틴도 아니면서.
토요일 이른 아침, 지난주에 이어 예봉산을 찾았다. 비가 그치지 않아 바람막이용 자켓을
배낭에 넣고 우산을 들고 갔다. 차에서 내리려는데 비가 뿌려대 망설여졌다.
뭔 고생을 이리 사서 하누, 그냥 돌아갈까. 아니지! 이럴 때 우중산행을 안 하면 언제
해보겠어. 게다가 여긴 동네산이고 자주 다녀서 익숙하잖아. 곤란한 일 겪을 것도 없잖아.
까짓 거, 젖은 생쥐밖에 더 되겠어.
약간의 모험정신이 이겼고, 우산에 떨어지는 비를 맞으면서 계곡으로 올라가다가 정상
방향의 등산로에 접어들었다. 계곡 옆길은 개울이 되었고, 계곡에선 사나운 물줄기가 귀를
때려댄다. 주말 아침 정상엔 아무도 없다.
다행히 20여 분 정도 오르는데 비가 그치더니, 집에 올 때까진 비를 뿌려대지 않았다.
우중산행을 즐기기엔 아직 멀었나 보다. 이슬보다 큰 물방울들이 맺혀 있는데, 렌즈가
접사를 허락하지 않는다.
한여름의 산은 매미와 새, 나비와 풀벌레는 물론 꿩까지 신이 났다. 땀냄새를 맡고
달려드는 하루살이들과 유유히 비행하는 나비에 팔짝팔짝 뛰어다니는 청개구리와 두툼한
두꺼비까지 총출연해 로드 무비를 찍는다.
환호하며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내가 본 것을 카메라는 반도 못 담아냈다.
율리봉을 넘어 율리고개로 내려오다가 두물머리가 보이는 지점에 섰는데, 저 멀리 물안개가
예빈산과 북한강을 휘감아 피어오른다. 이런 날씨에 산에 오르지 않았다면 이 멋진 풍경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오늘 우중산행의 결정적 순간이었다.
'I'm wandering > I'm a pedestrian' 카테고리의 다른 글
어떤 간절함 (2) | 2011.07.24 |
---|---|
원투쓰리 원추리 (4) | 2011.07.18 |
우중산행 071611 (6) | 2011.07.17 |
하고 싶었던 일 (2) | 2011.07.11 |
산을 즐기는 다른 방법 (2) | 2011.07.05 |
산에서 읽는 기호 (2) | 2011.06.28 |
-
사실 요런 장면들 때문에 저도 비만 오면 산에 대한 유혹이 더 커져요.
날씨험할 때 정말 풍경이 기가 막히거든요.
제 고향에는 비가 와야만 터지는 샘물도 있는데 비가 올 때면 가서 그것좀 오래 간만에 보고 싶더라구요.
비오는 날 나선 걸음이 정말 보람있으셨겠어요.-
그러고보면 날이 안 좋네, 궂네 하며 불평할 것만도 아니네요.
맑은 날은 그런 날대로, 궂은 날은 또 그런 날대로 보여주는 풍경이 다르니까요.
저는 궂은 날 산행은 이제 막 경험했지만, 험한 날 산행은 아직 입문 못했는데,
여름이건 겨울이건 그런 날이 오면 좋겠단 바람을 가져봅니다.
비 올 때만 터지는 샘물은 정말 자연의 신비를 느끼게 해줄 것 같은데요.
-
-
황병구 본부장님이 페북에 올리신 링크보고 따라 왔습니다. ^^ 좋은 글들 감사합니다. 아, 저는 미국 코스타에서 섬기고 있습니다. 다른 건 몰라도 미국에 오시면 기억에 남는 산행은 책임지겠습니다(농담 아니고 진짜로!!! 특히나 요세미티쪽은 확실히!!! ㅎㅎ) 계속 좋은 글들 기대합니다.
-
요세미티 산행 책임지신단 말씀에 급친해지고 싶어집니다.^^
코스타에선 어떤 파트에서 섬기셨는지요?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
저는 18-25세를 위한 스크랜튼 코스타에서 섬깁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도 급친해지게 할만큼 산은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
미국의 top 3 day hiking course중 2위에 순위가 올라있는 yosemite half dome(왕복 약 28킬로미터, elevation gain이 약 1600미터-순수하게 이만큼을 올라야 합니다-- 소요시간 약 12시간)어떠십니까?
그런데 그러시려면 내년에는 시카고말고 스크랜튼에도 한번 와주셔야... ^^-
스크랜턴에 계셨군요. 휘튼하고 일정에 차이가 있으면 갈만한데,
휘튼에 가면서 동시엔 어렵죠.^^
그냥 요세미티 이야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그 정도는 제가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한 번 꿈을 꾸어보죠.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