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룽지백숙
Posted 2012. 2. 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근래 가장 추운 겨울날 중 하나로 기록될 목요일 점심에 직원들과 백운호수에 있는 누룽지 백숙집을 찾았다. 나는 고기류들 가운데 닭고기를 그리 즐겨 먹진 않지만(안 먹는 건 아니다), 함께 나오는 이 집 누룽지탕은 맛이 괜찮아 가끔 찾는다. 계절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많이 오는데, 호수변에 펜션같아 보이는 외관도 손님 끄는 데 한몫하는 집이다.
메뉴는 오리와 닭누룽지백숙 그리고 쟁반막국수가 전부다. 이렇게 단출한 메뉴를 내거는 집들이 맛집이 많다. 이것저것 분산하지 않고 한놈만 집중해 맛을 개발하기 때문에 특별한 맛을 만들 줄 알고, 대개는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자원방래(自遠訪來)해 주기 때문이다. 다섯이 가면 조금 애매한데, 한마리는 조금 적고, 두 마리는 넘치기 때문이다. 한마리 반이 있으면 좋겠는데, 그렇게는 안 판단다. 늘 그렇듯 막국수 하나와 한마리를 시켰는데, 적당했던 것 같다.
짜지 않은 동치미와 피클 그리고 배추 김치와 깍두기, 갓김치가 찬으로 나오고, 쟁반막국수가 먼저 서빙된다. 막국수는 상 앞에서 비벼 주는데 간이 조금 쎈 편이라 동치미나 물을 찾게 된다. 반찬도 가짓수는 너댓 되지만 이것도 역시 넓게 보면 김치류 하나다. 메인이나 사이드 둘 다 확실히 한놈만 잡으면 된다는 철학인 것 같다.
삼뿌리와 대추가 들어간 백숙은 부드럽고 잘 찢어져 먹기에 좋다. 닭 좋아하는 이들은 혼자 또는 둘이 한 마리를 먹을 수도 있겠지만, 우린 그 정도는 아니어서 나만 빼고 여직원 넷이 나눠 먹었는데 그리 부족한 것 같진 않았다.
내가 보기에 이 집의 하이라이트는 큰 뚝배기에 나오는 누룽지탕이다. 얼핏 보면 커다란 해시 브라운이나 돈까스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닭죽에 누룽지 덩어리를 통째로 넣어 끓인 것이다. 국자로 눌러주면 한 입 크기로 잘라지는데, 각접시에 퍼 놓으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된다. 국물이 진하고 쫀득한 게 이만한 수프도 따로 없다.
막국수와 누룽지탕을 함께 먹으니 닭을 안 먹어도 든든했다. 대개는 조금 많이 시켜 백숙과 막국수를 먹느라 누룽지탕은 남기게 되는데, 이런 손님들을 위해 이 집은 남은 음식을 포장해 준다. 언젠가 백숙 남은 것과 누룽지를 한데 포장해 집에 가져갔더니, 닭죽을 이렇게 맛잇게 하는 집이 있었느냐면서 식구들이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흡입한 적이 있었다. 신기하게도 나만 빼고 셋 다 백숙 매니아들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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