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편함과 소리함
Posted 2012. 6. 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Joy of Discovery처음 가 보거나 낯선 곳을 갈 때 쓰레기통과 함께 내 시선을 잡아끄는 것 중 하나는
우편함이다. 편지나 엽서를 마지막으로 쓴 게 언제였는지 잘 기억이 안될 정도고, 여전히
쓰는 것보다 받는 걸 좋아하지만 여행지나 처음 가본 곳의 우편함의 독특한 모양새에 자주
눈을 돌리게 된다. 아마 설치한 이의 개성이랄까 미적 감각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팔당 조개울에서 견우봉 올라가는 등산로 초입엔 몇 군데 식당과 집이 있는데, 그 중
어느집의 우체국 로고까지 새겨진 평범한 우편함이다. 대문은 따로 있는 듯한데, 문밖 텃밭의
나즈막한 3단 돌담 위 잘 보이는 끝자리에 문패처럼 자리잡고 있다. 세심한 주인은 행여 바람에
넘어지기라도 할까봐 벽돌 두 장을 얹어 놨다. 저렇게 해 놓으면 웬만한 바람은 견디나 보다.
생김새는 그리 볼품 없는 규격 우편함이지만, 자리 하나만큼은 끝내주는데 이쯤 되면
우편함도 꽤 대접을 받는 것 같다. 요즘 같은 세상, 고지서나 찌라시 나부랭이들이 아니라,
산과 강을 끼고 있고, 다산 고택도 가까운 이 마을의 멋진 풍경 만큼이나 아름다운 소식들이
가득 전해지는 우편함이 되면 좋겠다.
등산길엔 그냥 지나쳤는데, 하산길에 보니 남한강 자전거길이 시작되는 옛 철길 옆에
하이커들의 의견을 듣겠다는 고객소리함이 설치돼 있었다. 나름 프로방스풍으로 멋을 내려 한
것 같은데, 뭔가 2% 부족한 게 조금 생뚱맞아 보였다. 볼펜 한 자루만 남아 있고, 종이는 눈에
띄지 않았다. 거미줄이 쳐진 걸로 봐서 한동안 이용하는 이들이 거의 없었던 모양이다.
추측컨대 이 고객소리함은 자전거길 여러곳에 같은 모양으로 설치돼 있을 듯 싶다.
모르긴 해도 길을 조성하면서 이 소리함도 구간 구간 여러 개를 세트로 잘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그저 장식품으로 세워 놓은 게 아니라 소식이 오가는 통로로 세운 거라면 길만 아니라
여기도 깨끗이 청소하고 관리하면 좋을 듯 싶었다. 그저 장식용으로 세웠더라도 지저분하면
다가갈 마음도 안 생기는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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