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즈마리표 오곡 비빔밥
Posted 2013. 2. 2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결혼하기 전엔 어머니가 해 주시는 동지 팥죽이며 대보름 오곡밥 같은 걸 그리 고마운 줄 모르고 먹다가 결혼하고 맞벌이를 하면서는 추억의 음식이 됐다. 처음 얼마간은 설날에 보시고도 대보름날에도 둘을 부르셔서 먹이시곤 했는데, 그땐 사실 약간 귀찮은 내색을 보이곤 했다. 오곡밥에 들어가는 찹쌀을 그리 선호하는 편이 아니기도 했고, 밥을 지나치게 중시하시는 가치관과 다이어트의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슬슬 충돌하는 기색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십 몇 년 간은 오곡밥이니 팥죽이니 하는 것을 집에서 먹을 일이 없었다. 둘 다 그런 걸 안 먹으면 어떻게 되는 타입도 아니고, 아이들이 생기면서 동짓날이나 대보름까지 챙기지 않게 돼 그냥 우리 좋아하는 메뉴들로 식탁을 차리고 비웠다. 가끔 생각이 나면 슈퍼에서 파는 나물 몇 개 사다가 비벼 먹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몇 해 전부터 입맛이 조금씩 예전 기억을 떠올리면서 직접 해 먹진 않아도 사다 먹게 됐는데, 두 달 전 동짓날에 죽집에서 팥죽을 시켜 먹었고, 주일의 대보름날 저녁엔 마트 옆 솜씨 좋은 반찬가게에서 만들어 놓은 나물 몇 가지를 사다가 먹을 요량이었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마침 쉬는 날이라 문을 닫아 계획에 없던 오곡밥과 나물들을 직접 해 먹어야 하는 바쁜 상황이 전개됐다. 그것도 한참 물이 올라 흥미진진한 K-팝스타 생방 시간을 껴서 말이다.^^
마트에서 사 온 오곡밥 재료는 잘못 보면 닭모이용 정도로 보일 정도로 잡곡들이 아주 조금씩 담겨 있었다. 두어 시간 불린 다음 만든 오곡밥에선 찰기가 흘렀다. 공기에 담지 않고 비벼 먹으려고 아예 대접에 담아달라 했다.
나물 색깔과 종류를 따지면서 집에서 무쳐 먹는 나물을 고집하는 이들도 있지만, 제법 시간과 공이 가는 일인지라 사다가 먹는 것도 감지덕지였는데, 만들어 먹게 되자 일이 제법 커졌다. 영월 시래기와 표고버섯 그리고 말린 가지를 사 와서 불리고 삶고 무치는 시간과 수고가 따른 끝에 삼색나물이 완성됐다.
오곡밥 위에 나물을 얹고 고추장 한 술과 들기름 반 술 정도 뿌린 다음 쓱쓱 비볐다. 찹쌀 기운에 골고루 비벼지진 않았지만, 시장이 반찬인데다 모처럼 집에서 해 먹는 대보름 비빔밥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하면서 금세 바닥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집에서 먹는 비빔밥의 장점이랄까 미덕 중 하나는. 거의 다 먹고 바닥이 보일 만하면 밥을 조금 더 푼 다음에 다시 나물들을 조금씩 얹어 두 그릇째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끝맛을 조금 내려고 고추장을 한 숟가락 더 넣으니 처음 것보다 훨씬 빨개지면서 식욕을 자극한다. 건새우 시금치국을 곁들인 훌륭한 대보름 저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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