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진 피터슨은 왜 친구에게 편지를 썼을까
Posted 2010. 4. 28. 10:18, Filed under: I'm journaling/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대개 월간지 원고는 마감일까지 미루다가 촉박하게 쓰곤 하는데, 이번 달 원고는 오랜만에 일찌감치 끝냈다. 읽어 보면 알겠지만, 토요일 산행이 준 선물 가운데 하나였다. QTzine 6월호에 실릴 글이다.
4월 하순 어느 토요일 수락산역을 오가는 지하철에서 작은 책을 읽었다. 화창하고 청명한 봄날 오후의 수락산 등산도 재미있었지만, 무겁지 않은 책(163면)이라는 이유만으로 눈에 띄어 배낭에 넣어간 책 치고는 더할 나위 없는 수작(秀作)이었고, 독서의 즐거움을 만끽하게 했다.
지금은 대표적인 기독교 저자 중 하나요 우리 시대의 탁월한 영성신학자로 알려지면서 많은 독자를 갖고 있지만, 그의 책으론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된 이 책이 나온 1999년만 해도 그가 이렇게 유명한 저자가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200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소개되면서 많은 팬을 확보하게 된 데는 영성과 연결시켜 다윗의 생애를 새롭게 조명한 『다윗,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 렉티오 디비나를 알기 쉽게 설명하면서 깊이 있는 큐티를 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이 책을 먹으라』(이상 IVP)와 유려한 생활언어로 성경을 새로 번역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메시지 신약』(복 있는 사람)의 공이 컸지만, 서점 어딘가에 숨어 있으면서 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는 그의 다른 책들 - 번역서만 삼십여 권에 이른다 - 도 하나같이 기본 이상의 읽는 즐거움을 제공하면서 생각을 자극한다.
내용도 알차지만 접근방식이 신선하고 문장마저 좋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걸 삼위일체라고 하던가. 내 경우에 이런 저자는 존 스토트(John Stott)와 필립 얀시(Philip Yancey) 말고는 거의 없었다.
목회자인 피터슨은 대학 친구였던 거너 박사로부터 40년 만에 편지를 받고 답장을 써 내려간다. 거너는 그의 친구이긴 하지만 특정인을 지칭하는 것 같진 않다. 과학자로 교회를 떠나 있다 최근에 다시 회심한 듯한 친구에게 보내는 우정어린 양육서신인 셈이다.
근데, 새롭게 신앙을 갖게 된 친구에게, 그것도 목사 친구가 쓰는 편지치고는 참 담담하고 차분하다. 이런 편지라면 으레 있을법한 어떤 감정적 흥분, 지나친 성급함, 설교조로 가르치려 듦, 어떤 공식이나 틀로 몰고 감, 연약한 새신자에 대한 교정을 찾아볼 수 없다. 54편의 그리 길지 않은 편지글은 “아, 내게도 이런 진심어린 조언과 우정어린 격려글을 주고받는 친구가 있었으면!” 하는 솔직한 바램을 갖게 한다. 정말 친구란 이런 사람이고, 이렇게 응원해 주는 사람 아니겠는가.
이 책을 읽으면 양손에 떡을 쥐게 되는데, 한손엔 신앙의 진면목을 새롭게 되새겨보는 기쁨이, 다른 한손엔 이제 막 신앙생활을 시작하는 주위 친구를 이런 방식으로 응원해야겠구나 하는 결심과 열정을 느낀다. 이래서 대가(大家) 또는 고수(高手)의 책은 읽는 재미와 삶을 바꾸는 힘이 있는 것이다. 책 읽기(Reading)의 즐거움과 글(편지나 메일) 쓰기(Journaling)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게 만드는 이 책은, 70년 전에 나온 C. 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홍성사)와 함께 편지글 형식의 책으로는 기억해 둘만한 책이다.
이 책 초판은 그냥 『친구에게』(홍성사)였는데, 2006년에 제목을 바꿔 요즘 서점엔 『교회에 첫 발을 내디딘 내 친구에게』란 이름으로 꽂혀 있다. 말미에 실린 글 ‘진정한 영성이란?’과 한 면 짜리 부록 ‘주제별 찾아보기’도 도움이 된다. 원제는 The Wisdom of Each Other: A Conversation Between Spiritual Friends.
하나님은 우리 두 사람 모두의 의식과 행동의 중심을 붙잡고 계셨지. 자네가 하나님을 향해 주먹을 휘두른 것과 내가 하나님과 악수를 나눈 것의 차이는, 우리 두 사람의 삶을 지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만큼 중요하지 않을지도 몰라. (20면)
별로 오래 가진 않은 셈이지? 교회에 대한 자네의 로맨스 말이야. 지금 자네는 그다지 친밀감을 느끼지 못하는 친구들 틈에 끼게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군. 그분은 서로 취미가 같고 잘 어울릴만한 사람들을 미리 뽑아 두시는 일 같은 건 절대 하지 않으시지. 자네가 그들과 공통점이 거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야. 교회는 하나님의 것이지 자네의 것이 아니라네.^^ (23면)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면서 자네가 겪는 어려움을 충분히 공감해. 그리스도인들이 실천에 실패하는 결심들을 도표로 그릴 때, 맨 꼭대기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기도 훈련이거든. (39면)
그 동안 멀어졌던 가족과 예수님 때문에 화해하기로 했다면 화해의 방식도 예수님을 따라야 하지 않을까? 성경은 누이동생의 마음을 움직이라고 하는 대신 사랑하라고 한다네. 사랑은 아마도 자네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정중하게 행동하는 것을 뜻할 거야. (77면)
'I'm journaling > 숨어있는책, 눈에띄는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잠수 타고 싶은 형제들에게 (2) | 2010.06.07 |
---|---|
서울도서전 (4) | 2010.05.13 |
잊히기 위해 산 사람 (0) | 2010.04.05 |
사순절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가요? (2) | 2010.03.04 |
당의정은 아니지만 씹어 먹을 만한 책 (0) | 2010.03.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