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ellow tail] 4총사
Posted 2013. 6. 12.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몇 달 동안 홀짝홀짝 마시던 와인 병을 버리지 않고 베란다에 있는 수납장 위에 올려 놓았더니 그럴듯한 컬렉션이 됐다. 누가 보면 주당(酒黨)인 줄 알겠지만, 전혀 아니올시다다. 와인이건 맥주건 한 잔만 해도 얼굴이 불콰해지면서 혼자 다 마신 것 같은 촌티를 내고, 그저 한두 달에 한 번 코스코에 갔을 때 절묘한 동선(動線)에 있는 와인 섹션을 지나치지 못하고 눈에 띄는 만원대 초반의 것으로 한두 병 집어왔다가 두고 먹는 정도다.
최근엔 와인을 잘 아는 지인의 소개로 왈라비가 그려진 만원대의 대중적인 호주 와인 옐로우 테일(yellow tail) 쉬라즈를 알게 됐는데, 맛이 괜찮았다. 모스카토, 까베르네 쇼비농, 멀롯도 우리 입엔 괜찮았다. 물론 각각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잘 모르며,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면 아마 전혀 구분하지 못할 테지만 말이다.^^
중학생 때부터 다니기 시작한 교회는 주초(酒草)를 아예 금하는 보수적인 교회였던지라 담배는 입에도 안 대고, 술도 배우지 않았다. 막걸리 대학을 다녔으면서도 고집스럽게 술을 가까이하지 않아 집에서도 말을 듣고 친구도 많이 사귀지 못했던 것 같다. 졸업 후 사회생활도 잠깐의 회사 생활에 이어 바로 기독교 사역으로 일관한 까닭에 와인이나 다른 술은 배워 익숙해질 겨를이 없었고, 한참 뒤에야 집에서나 가끔 홀짝하는 수준이 됐다.
프랑스 와인 이야기가 나오는 <시마 부장> 같은 만화를 보면 와인의 세계가 대단하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주당이 아닌 내겐 경험한 이 세계 자체가 지극히 좁고 제한된 가운데 대개 거기서 거기였던 것 같다.^^ 만화에서처럼 캬~ 소리가 절로 나오면서 혀끝과 머리카락이 불쑥 솟아오른다든지, 눈알이 튀어나올 정도로 맛있는 건 아직 맛보지 못했고, 조금 엉뚱하게도 그저 브랜드 디자인의 사소한 차이에 더 재미를 느끼는 수준이다.
수만원 또는 수십 만원대의 탁월한 와인을 맛본다면 내 그런대로 괜찮은 미각이 기꺼이 맛을 감별해 낼진 모르겠지만, 그럴 맘도 없고 그럴 기회도 생길 것 같진 않은데, 어쨌거나 이 옐로우 테일 친구들 정도면 당분간 뭘 고를까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I'm wandering > 百味百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돌마리 콩국수와 비빔국수 (2) | 2013.06.17 |
---|---|
독일 커피 (2) | 2013.06.13 |
열무국수의 계절이 왔다 (2) | 2013.06.10 |
마늘 보쌈 (2) | 2013.05.22 |
씨애틀 Allegro와 Zoka 커피 (8) | 2013.03.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