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Snap 2 - 일본 술
Posted 2013. 8. 14.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Oisii Japan도쿄에 도착한 다음날은 피곤해서 못 일어났지만, 그 다음날은 새벽에 일어나 아내와 호텔 근처를 한 시간 정도 산책했다. 날은 더워질 기색이었지만 새벽공기는 기분 좋을 정도로 시원하고 상쾌했다. 전체적으로 깨끗한 골목 풍경이 산책길의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었다.
전통주를 파는 집인듯, 술독 여섯 항아리가 배달돼 있었다. 독 하나에 15-20 리터는 족히 들어가 보이는데, 저걸 하루에 다 파는 건지, 아니면 마침 배달일에 내 눈에 띈 건지. 항아리 겉면을 회칠한 거나 아구를 빨간 종이에 끈으로 묶어 놓은 게 전통주 냄새가 풀풀 난다. 우연의 일치겠지만, 술독 여섯 항아리는 예수님이 가셨던 가나의 혼인잔치를 연상시키면서 슬며시 웃음을 짓게 만든다.
메이지 신궁을 돌아보고 입구에 있는 기념품점에 들렸는데, 선물용 작은 술단지를 촘촘한 짚끈으로 둘러싸고 새끼줄로 묶어 들고갈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게 보였다. 술 이름은 신의 하사주라고 겁나 크게 붙였지만, 술맛은 그 정도는 아닐 것이다.^^ 특이하게 아래쪽에 병뚜껑을 달아 놓아 그쪽으로 따라 마시게 해 놓았다.
마셔보진 않았지만, 사실 일본은 술이 많이 발달한 나라 가운데 하나다. 일본술의 대명사로 불리는 사케는 쌀로 빚은 일본식 청주인데, 술맛을 좌우하는 쌀과 물 모두 일본 전역에 이름난 곳들이 많아 브랜드도 겁나 많다고 들었다. 그 브랜드 중 하나인 정종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우리는 일본술 하면 정종을 떠올리게 됐다고 한다.
한 술집 앞에 자기네가 취급하는 술병을 진열해 놓았는데, 한자와 일본어, 영어와 숫자로 각각 특색 있게 술병을 빛내고 있었다. 병은 대병이라 큰 멋은 없지만, 이렇게 나무 보관대에 함께 놓으니 그럴듯해 보이고, 퇴근길에 그냥 지나다닐 수 없는 참새방앗간이 따로 없겠다.
한 술 더 떠서 어떤 술집은 아예 가게 벽면 한쪽을 술병에서 오려 낸 수백 개의 스티커로 닥지닥지 붙여 놓았는데, 그 자체로 멋진 풍경을 이루면서 이 집의 풍취를 더해주고 있었다. 겹겹이 붙여 놓은 게, 들춰보면 그 전에 붙여 놓았던 다른 브랜드들이 초벌 도배돼 있을지도 모르겠다.^^
술이란 게 원래 부어라 마셔라, 따르고 마시기를 거듭하는 것이니, 이렇게 켜켜이 붙여 놓는 것도 낯선 풍경은 아닐 터이다. 우리도 얼마 전부터 커피 봉투에서 이렇게 로고 부분만 오려내 모으기 시작했는데, 이 정도 풍경 이루려면 몇 년은 족히 걸리겠다 싶다.
메이지 신궁에도 입구 쪽에 신궁에 납품한 일본주 술단지들을 도열해 놓은 곳이 있는데, 몇십 대 일 또는 몇백 대 일의 경쟁 끝에 선정됐을 전통과 실력 있는 주류 메이커들의 위풍당당 프라이드가 바람결에 내 코로 스며들었다. 신궁의 채택 여부에 따라 양조장이나 술 장인들의 평판이 달라졌을 테니 기를 쓰고 만들지 않았을까. 신궁은 권위를 부여하고, 양조장들은 명예와 실리를 나눴을 것이다.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듯, 윗칸 오른쪽이 비어 있다.
사케는 결국 이번 여행에서도 입문하지 못했다. 대신 저녁 식사 때마다 목넘김이 끝내주는 나마비루를 즐겼고^^, 편의점, 공항 등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캔맥주들을 열심히 구경해 주었다. 맥주도 널리 알려진 메이저 브랜드 말고 소규모의 크라프트 브랜드들을 구경하고 싶었지만, 이번 여행의 목적이 술문화탐방이 아니었던 터라 그냥 편의점에 갈 때마다 뭐가 있나 기웃거리고, 약간의 가격 차이를 살펴 보는 정도에 그쳤는데, 그래도 여행은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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