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물소리길 11가지 풍경(9) - 다리
Posted 2013. 11. 25.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길가에서 스치듯 지나가며 볼 때 그 정도 개울에는 별로 어울릴 법 하지 않은 철교가 배추밭 앞에 놓여 있었다. 폭이 4-5 미터 남짓하고, 깊이도 별로 없는데다가, 한여름 지난 지금은 물 한 방울 흐르지 않아 도랑이라 불러도 무방할 이 개울에 저렇게 근사하고 번듯한 브릿지라니, 참 희한한 풍경이다 싶었다.
더군다나 벼와 배추 농사를 짓는 분은 60은 훨씬 넘은 노인분으로 보였는데, 손잡이가 있긴 해도 평평하지 않은 저 철교를 건널 때마다 약간 어지러워 하실지도 모르겠다 싶었다. 그런데 다리는 앞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다. 그 옆으로 공사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길다란 철판 다리가 사선으로 길게 놓여 있었다.
내가 셜록 홈즈나 아가사 크리스티는 아니지만, 서 형사 추측컨대, 이 다리들의 용도는 이렇다. 일단 이 동네는 물난리를 겪은 경험이 있어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설치했을 가능성이 있다. 무엇보다도 저 농부 노인은 무릎 관절이 안 좋아 젊은이들처럼 개울 아래로 내려갔다가 올라가는 걸 힘겨워했는데, 이를 보다 못한 자녀나 본인이 다리를 놓았을 것 같다.
밭에 갈 때나 손에 짐이 없을 땐 오른쪽의 일자 다리로 건너는데, 폭이 조금 좁고, 조금 돌아가긴 해도 평평해서 걷기에 편해서일 것이다. 그러면 왼쪽 아치형 스틸 브릿지의 용도는 뭘까? 저 다리는 수확철 추수 때에만 몇 번 이용하는 다리일 것이다. 등짐을 지거나 양손에 배추를 잔뜩 든 채로 저 노인이 폭 좁은 일자 다리를 건너기란 만만치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럴 땐 조금 경사가 있고 바닥이 뚫려 있긴 해도 양쪽 손잡이가 달린 이 아치형 다리가 좀 더 안전해 보인다.
굳이 다리를 놓지 않아도 괜찮아 보이는 곳에 다리가 필요하다면 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놓거나 돌 다리를 만들었을 텐데, 이 동네는 모양이 서로 다른 철제 다리를 두 개씩이나, 그것도 바로 옆에 거의 붙여 놓았으니 흥미가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흔히 볼 수 있는 다리였다면 무심코 지나갔을 텐데, 철제 다리 두 개가 이런저런 상상의 나래를 펴보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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