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여행(5) - 박경리 기념관
Posted 2014. 4. 19.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통영을 찾는 이들이 빼놓지 않고 들리는 곳 중 하나가 미륵산 위까지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가 한려수도를 조망하는 건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가 간 날은 토요일 4시쯤으로 사람들이 구름같이 몰려들어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다. 굳이 그렇게까지 기다렸다가 타고 싶진 않아 꿩 대신 닭으로, 아니 봉황으로^^ 박경리 기념관으로 발길을 돌리는 것으로 통영 여행의 대미를 장식했다.
시내 외곽에 자리 잡은 기념관은 현대식으로 쾌적하게 잘 지어졌는데, 5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하는 선생의 묘소가 있는 공원이 함께 아름답게 조성돼 있었다. 게다가 윤이상 기념관처럼 관람료도 없다. 둘 다 다른 동네에 있었다면 최소 2-3천원씩은 받았을 것 같다. 시내 버스가 예까지 오는데, 정류장 이름도 박경리 기념관이다. 선생의 사진이 기념관을 찾아오는 방문객들을 웃으며 맞이하고 있었다.
평생 책을 읽고 쓴 선생의 서재 풍경 사진은 어떻게 할 수 없는 책꾸러미들로 책산책해(冊山冊海)를 이루면서 보는 이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집필실을 옮긴 듯한 방엔 돗자리를 깔고 잡지와 신문, 안경과 돋보기 등이 놓인 길다란 교자상이 놓여 있고, 그 뒤로 선생의 단아해 보이는 남색 두루마리가 걸려 있다. 방바닥엔 두툼한 국어대사전도 보였는데, 저기서 소설 속의 말을 고르고 골랐을 것 같다.
요즘 작가들이야 컴퓨터로 글을 쓰고 치지만, 선생의 시대만 해도 일일이 원고지에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가며 적어내려가야 했는데, 친필 원고는 단정한 필체를 보여주었다. 선생의 대표작 <토지>의 여러 판본이 전시돼 있는데, 1969년에 집필을 시작한 이 소설은 1994년에 완간하기까지 25년 동안 원고지 4만 매 분량으로 1부에서 5부까지 나누어 발표됐다. 그야말로 대표적인 장편대하소설이라 할 수 있는데, 지금 시중에는 21권 짜리가 나와 있다.
기념관을 나와 5분 정도 올라가면 선생의 묘소가 있는 공원이 조성돼 있다. 여성 작가라 그런지 공원은 전체적으로 여성적인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선생의 묘지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양지 바른 곳에 크고 넓게 자리 잡고 있었는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묘비가 세워져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대신 묘지 앞 상석(床石)에 누군가 들꽃 몇 송이를 가지런히 놓고 갔는데, 돌에 새겨 화석 같은 장광설(長廣舌)보다 훨씬 선생을 기리고 있었다.
공원에 중간중간 놓인 벤치에 앉으면 통영 앞바다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데, 지금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가을에 단풍들 때 오면 풍경이 더욱 볼만 하겠다 싶었다. 소설가를 기념하는 공원답게 선생의 대표작 <토지>와 <김약국의 딸들>의 서두 부분이 돌에 새겨져 세워 있는데, 저 돌 사이로 들어가면 선생의 소설 세계가 열리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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