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 여행(3) - 청마문학관
Posted 2014. 4. 17.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고교 시절, 학교 앞 혜화동 로타리에 작은 우체국이 있었다. 그 시절 청마의 시 가운데 거의 대표작으로 꼽히던 <깃발>을 좋아하는 이들 사이에서 내가 좋아하면서 거의 외웠던 건 소박한 <행복>. 에메랄드 빛 하늘이 환히 내다뵌다던 우체국에서 우표를 사고 편지를 쓴다는 시였다. 왠지 여성이 썼을 것 같은 감성의 싯구들이 나는 마냥 좋았다.
청마(靑馬) 유치환 선생(1908-1967)의 고향에 와서 그냥 지나친다면 선생과 그 시에 대한 예의가 아닐 터. 게다가 다음 행선지로 잡은 이순신 공원 가는 길목에 있으니, 어찌 아니 찾으랴. 문학관 위에 선생의 생가터도 복원해 놓았는데, 원래 있던 자리에 길이 나면서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올초부터 받기 시작한 입장료는 천5백원.
선생이 어떤 시인인지 요즘 세대들은 잘 모를 것 같은데, 문학관 안에 설치된 해설판 한 대목을 살펴보면 감이 잡히려나 모르겠다. 선생이 환갑을 목전에 두고 불의의 교통사고로 운명을 달리했을 때 신문마다 선생에 대한 조사(弔詞)가 실렸는데, 김동리, 서정주, 조지훈, 김상옥 등 당대의 문인들이 아쉬워하며 그를 기렸다는 게 새삼 눈에 들어왔다. 청록파 조지훈은 "거지 같은 나라에서 괄시 받는 시"를 부끄러워하지 않았다고 노래한다.
선생의 친필 원고들과 작품집들이 유리장 안에 전시돼 있는데, 오래된 원고와 낡은 책장을 넘겨 가면서 당시 향기를 맡고 싶었지만, 오육십여 년 전에 나온 고색창연한 것들이라 이제는 희귀본이 되어가고 있어 그렇게 보존해야 할 것 같았다.
통영에 오면서 윤이상 선생 기념관에나 가 보려 했는데, 뜻밖에도 통영에서 태어난 쟁쟁한 문인, 예술가들이 많았다. 청마 선생의 형인 극작가 동랑 유치진, 화가 전혁림, 그리고 김춘수 시인과 박경리 선생도 여기가 고향이었다. 이번 여행이 이분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여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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