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에선 뭘 먹나
Posted 2014. 7. 23.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Wild Yosemite요세미티에 4박5일 있는 동안(실제 백패킹은 3박4일) 먹는 건 어떻게 해결했을까. 당일치기 하이킹처럼 이것저것 싸 갖고 가서 먹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하고, 며칠 동안 최소한의 짐만 갖고 다녀야 해서 무게와 부피를 줄이는 게 최우선 과제였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에서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에 함께 나선 친구 카츠가 이것저것 바리바리 배낭에 넣었다가 죄다 길에 내던지는 장면이 실제로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요세미티 같은 야생 환경에선 먹고난 뒤 설거지도 할 수 없어 치밀하고 비상한 계획이 필요하다.
Shiker님의 제안으로 한국에서 사 간 즉석밥 밥풀떼기가 톡톡이 효과를 발휘했는데, 버너로 물을 끓여 붓기만 하면 10분쯤 있다가 괜찮은 밥이 돼 시장한 우리를 즐겁게 했다. 오뚜기 미역국, 북어국, 육개장을 끼니마다 함께 넣어 다른 반찬 없이 죽처럼 먹었는데, 조금 단조롭긴 했어도 설거지도 필요 없고 이만한 메뉴도 찾기 어려울 것 같다.
아침과 저녁은 캠핑장 텐트 옆에서 해 먹지만, 점심은 트레킹 중에 적당한 지점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한 시간 정도 쉬면서 해 먹는다. 오후 트레킹이 남아 있어 완전한 휴식은 맛볼 수 없고, 요기만 때우는 시간이다. 40대 젊은 친구들은 종종 시장끼를 느꼈지만, 난 배는 그리 고프지 않고 오히려 처음 해 보는 백패킹의 긴장을 잠시 내려 놓는 시간이 됐다.
백패킹 둘째날엔 특식으로^^ 신라면을 끓여 먹었는데, 미국에서 만든 거라서 맛이 여기서 먹는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그래도 국물맛을 비롯해 산중 라면의 위력은 대단했다. 배낭 속에 넣고 다니는 곰통(Bear Canister)을 깔고 앉아 라면 몇 가락에 후루룩 국물 들이키는 게 행복일지는 예전엔 정말 몰랐었다.
주식은 그렇다 치고, 아무리 산이라 하더라도 밥만 먹을 순 없다. 이동 중에 간식은 에너지바가 담당했다. REI란 등산용품 전문점에서 판다는 프리미엄급 에너지바가 부족한 열량을 보충해 주었다. 음료는 게토레이 가루를 탄 물이 전부였는데, 제법 효과가 있었다. 다음에 미국 가면 마트에서 게토레이 분말 한 봉지 사 와야겠다.^^
역시 REI에서 파는 에너지 젤 부스터(Booster)도 이번에 처음 먹어봤다. Superior Energy Maximum Recovery란 이름 그대로 지쳤을 때 먹으면 순간적으로 반짝 힘이 나게 하는 짜 먹는 비상식이다. 일종의 레드볼 비스무리한 건데, 에스프레소 맛을 비롯해 혀에 착착 감기는 맛을 자랑했다. 트레킹 기간 중에 크게 피곤했던 순간이 없어 한 번만 먹어봤는데, 글쎄, 불끈 힘이 돋거나 하진 않았다.^^
식후에 마시는 커피 한 잔도 산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인데, 스타벅스에서 만든 인스탄트 커피 비아(Via)를 두어 번 마신 다음엔 가져간 게 뚝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간만에 커피 금식을 해야 했다. 맥심이건 카누건 갖고 가는 건 일도 아니었는데, 몇 개만 챙겨오는 바람에 살짝 아쉬웠지만, 뭐 이런 것도 트레킹의 즐거운 추억 아니겠는가. 둘째날 트레킹 마치고 선샤인 캠프에서 우리의 모델 토니가 CF 한 장 찍고 있다.^^
3박4일 트레킹/백패킹을 마치고 밸리(Valley)로 내려오면서는 35도를 훌쩍 넘는 날씨로 더위를 먹은데다가 막바지 체력이 살짝 떨어지는 바람에 처음으로 고생했는데, 이때 혜성처럼 나타나 우리를 구원해 주리라고 예고된 것이 바로 다리 건너 캠프장 입구에 있다는 스낵 집 소식이었다. 길가에 주저앉아 마시는 얼음 가득한 콜라와 아이스크림 샌드위치는 끝내줬다.
마지막 캠프를 위해 텐트를 치고 $5 짜리 샤워를 즐긴 다음 Lodge에 있는 카페테리아 식당에서 며칠만에 제대로 된 만찬을 나누었다. 마음 같아선 몇 접시라도 비울 것 같았는데, 며칠 동안 소식과 간편식에 익숙해진 위는 저 정도가 적당했다. 시원한 청량음료와 뜨거운 커피에 과일 한 컵을 곁들이니 더 부러울 게 없었다.
그래도 이렇게 요세미티 대장정을 끝내긴 아쉬워 야식으로 커리 빌리지(Curry Village)에서 피자 한 판을 시켜 야외 테이블에서 졸린 눈을 비벼가며 나누었다. 한국에서였다면 딱 치맥 타임인데, 맥은 있는데^^ 치킨이 없어 대신 시킨 거다. 피자는 역시 맛있었고, 방금 전까지의 황홀했던 순간들을 떠올리게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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