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회복산행
Posted 2014. 7. 21.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요세미티 백패킹을 마치고 일주일 전에 귀국했다. 요즘은 미국 가서 느끼는 시차는
별 거 없이 지나가는데 돌아와서 느끼는 리버스 시차로 고생을 한다. 처음 사흘 간은 오후만
되면 여지 없이 무기력해지고 졸음이 오는 바람에 힘들었고, 퇴근해선 바로 쓰러져 자다가
한밤중인 두세 시면 눈이 떠지는 생활이 반복됐다. 토요일이 되어서야 하루의 리듬이
회복되는 기미가 보였으니 꼬박 일주일이 걸린 셈이다.
일주일이 지난 어제도 여지없이 새벽 4시에 눈이 떠졌는데, 열흘 전 새벽 3시 반에
깜깜한 밤하늘 은하수 별을 보면서 하프돔 산행에 나섰던 생각이 나면서 이 시간에 산에
갔다오는 것도 재밌겠단 생각이 들었다. 이름하여 새벽회복산행. 모자를 거꾸로 쓰고 그 위에
헤드 랜턴물 차고 배낭에 물 한 병 넣고 동네 검단산을 향해 나섰다. 잠결에 놀란 아내가
조금 밝아지면 가지 그러냐 했지만, 4시 반에 등산화를 신고 집을 나섰다.
등산로에 접어들었을 때 처음 30여 분간은 헤드 랜턴 불빛에 의지해야 했는데, 5시가
지나면서 주위가 슬슬 밝아지기 시작하면서 멀리 능선 윤곽이 드러나면서 핸턴을 끄고 걷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에 1차 목표점인 곱돌약수터에 이르자 안개로 멀리는 안 보여도
주변은 분간할 수 있는 완연한 새벽이 됐다.
가뭄이 계속되곤 있어도 한여름 무성한 나무와 풀이 이정표와 안내판을 거의 둘러싸고
있었다. 약수터 아랫쪽 커다란 돌대야에 고인 차가운 물로 팔을 씻고 허푸허푸 일곱 번 연속
세수를 해 대니 정신이 버쩍 든다.
갑자기 아무도 없는 산 중턱에서 셀카 놀이를 하고 싶어졌다. 10초 샷에 맞춰 나무 기둥
위에 놓고 셔터를 누르고선 이러저런 포즈를 취해 봤다. 아무래도 잠이 좀 덜 깼나 보다.^^
혼자인 줄로만 알았는데, 정상에서 막걸리 파는 아저씨가 오늘 팔 물량을 등짐을 지고
올라오다가 신새벽부터 안돼 보였는지 찍어 드릴까요 하길래 민망해 없던 일로 하고
잽싸게 토꼈다.
이번에 하프돔 올라갈 때 입으려고 살로몬에서 산 셔츠는 오랜만에 밝은색을 골랐는데
생각보다 조금 튀어 보였다. 무늬가 있었거나 어깨와 팔에 카키색이 없었다면 완죤 날라리로
보일 뻔 했다. 요세미티에선 아웃도어 웨어도 한국 사람들만 화려하고 튀는 컬러라 쉽게
눈에 띄었는데, 선택은 자유라지만 과유불급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 그래도
S자 로고는 내 이니셜과 같아 가벼운 친근감이 느껴진다.^^
그러고보니 집에서 새벽산행을 얼마만에 하는 건지 모르겠다. 잘 안 하게 돼서 그렇지
할 수만 있다면 호젓하고 상쾌하고 번거롭지 않아서 좋다. 산이 보여주는 풍경도 다른 때와
제법 차이가 나는데, 빛이 다가오면서 어둠이 사라져 가는 숲길의 음영과 그라데이션은
해질녘과 더불어 거의 하루 중 가장 좋은 시간대일 것이다.
거리로는 아직 조금 더 가야 하지만, 높이로는 대충 꼭대기 부근까지 와서인지 더 이상
자신을 감출 수 없는 빛이 쏟아져 들어올 채비를 하면서 그림 같은 순간들이 연출된다. 이런
풍경은 새삼 공기에도 밀도가 있다는 생각을 부추긴다. 흐린 날과 더불어 어두운 시간대에
산이 주는 아름다운 선물이었다.
집을 나선 지 한 시간 반쯤 됐을까, 헐떡 고개를 다 올라 왼쪽 계단에 접어드니 저 멀리
정상으로 통하는 구멍 같은 게 보이기 시작하면서 마지막 피치를 올렸다. 검단산 정상부는
제법 넓은 편이어서 저런 예고편에 이어 허공 같은 이미지로 갑자기 찾아온다. 6시를 막 넘긴
이른 시간인데도 두세 명이 벌써 다른 방향에서 올라와 있고, 5분 정도 쉬다가 하산할 땐
휴일 이른 아침 등산객 행렬이 끊이질 않았다.
정상석보다는 주변 산들 이름표를 달아놓은 전망도 앞에서 아이폰 셀카를 찍고 페북에
신고하려는데, 어떻게 하는 건지 몰라 잠시 우왕좌왕하다가^^ 겨우 한 줄 올리고 내려왔다.
낮엔 거의 35도까지 올라가는 찜통 복더위인데, 회복산행 핑게로 일찌감치 올라갔다 오니
확실히 몸이 개운해지는 게 느껴지고, 이번 리버스 시차도 거의 끝물에 이르렀다는 걸
직감하게 된다. 간만에 두 마리 토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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