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각도에 따라 다르다
Posted 2014. 9. 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보이는 각도에 따라 다르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산에서 보는 나무도 어디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 같은 나무인데도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보이는 모습이 다른 경우가 많다. 올라갈 땐 아무래도 전진과 상승을 염두에 두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특별한 느낌을 주는 나무 외엔 걸음을 멈추고 천천히 여유 있게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약간 느낌이 오는 나무도 일단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길에 봐야지 하고 지나칠 때가 많다.
그러면 내려올 땐 여유가 생기느냐 하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깜빡하고 그냥 지나치는 경우도 많고, 산행으로 쌓인 피로가 한가하게 나무 구경하기보다는 어서 밑에 내려가 편히 쉬거나 다른 일을 하도록 재촉할 때가 많다. 가끔은 올라오면서 봤던 것과 다른 느낌에 긴가 민가 하다가 그냥 내려오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꼭 챙겨봐야 할 경우엔 사진을 찍어두곤 하는데, 두세 각도에서 찍으면 헷갈릴 염려가 별로 없어진다.
용문산 장군봉(1,068m) 가는 길에 한 뿌리에서 세 개로 갈라져 자라고 있는 나무가 있었다. 가운데를 비워두고 삼각형 모양으로 가지를 내서 각각 일가를 이룰 정도로 성장한 나무였다. 문득 위에서 보면 달라보이겠다 싶어 몇 걸음 옮겨 보니, 과연 그랬다. 셋으로 갈라진 나무는 가지별로 다시 가지를 쳐서 다섯 개, 아니 위 쪽은 그 이상으로 또 가지를 치며 뻗어가고 있었다.
위아래에서 조금 달리 보이긴 해도 별로 특별할 게 없는 나무를 주의 깊게 보게 한 건 안쪽이 세로로 길게 파여 있었기 때문이다. 파인 길이가 1 미터는 되고, 폭도 제법 넓게 파여 나무 기둥의 거의 반은 파여 보였다. 이 정도 파인다고 쓰러질 나무가 아니란 건 올여름 요세미티와 레드우드 공원에서 원 없이 본 레드우드 나무들에게서 선행학습을 한 바 있다. 같은 수종(樹種)은 아니더라도 큰 나무들에게 이런 상처쯤이야 훈장과도 같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미국과는 달리 우리나라, 그것도 내가 다니는 동네산들에서 이렇게 깊숙이 파인 나무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아마 안쪽이 파이기 시작하면 얼마 못 버티고 시들해져 성장 자체를 멈추고 말라 비틀어지거나 부러져 바스라지는 게 태반일 텐데, 이 나무는 용케 버텨냈고, 그래서 내 눈에 띄기까지 했다. 한쪽에선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였지만, 각도를 달리하니 새롭게 보였고, 또 그 속에 이런 비밀을 숨겨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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