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나무 사이로 걷기
Posted 2014. 10. 4.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은고개에서 남한산성 한봉 가는 산허리길에 접어들면 벌써 갈색 낙엽이 두툼하게 깔려 푹신한 느낌을 주는 아름다운 트레킹 코스가 펼쳐진다. 산성까진 높낮이도 별로 없어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깝고, 그리 긴 시간이 소요되지 않아 누구나 한 번 걸으면 다시 오고 싶어지는 굉장히 좋은 길인데도 찾는 이들이 거의 없어 한적한 게 또 매력이다,
산길치고는 고요하고 잔잔해 자칫 심심해질까봐 중간중간 쓰러진 나무들이 바리케이드처럼 잠시 길을 막고 너는 누구냐고 물어온다. 통행을 가로막는 검문이라기보다는 너는 어떤 방식으로 통과할 거냐고 말을 걸어오는 것이다.
높이가 아예 머리나 가슴께까지라면 머리만 잠깐 숙여 지나가면 되는데, 애매한 건 허리 높이쯤 되게 쓰러져 있을 때다. 머리만 아니라 다리도 숙여 장애물 통과하는 게임하듯 지나가거나, 그렇지 않으면 조금 자존심 상하지만^^ 빙 둘러가야 하는데, 판단이 바로 안 설 때가 있다. 처음엔 불편한 장매물처럼 보이지만, 다니다 보면 산길이란 게 항상 서두르지 말고 조심에 조심을 거듭해야 한다는 걸 말해 주는 것 같기도 해서 자연스럽게 지나 다니게 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쓰러진 나무들은 인심이 좋은 편이라 가볍게 깡충 뛰어 넘거나 다리만 조금 들어올리면 되는데, 어떤 건 연속으로 나란히 누워 있어 낮은 허들 통과하는 기분으로 리듬을 타고 건너 뛰게 된다. 등산로를 막고 있는 쓰러진 나무들은 언제까지나 그대로 있진 않고, 누군가가 한 번 날을 잡아서 톱으로 잘라 아랫쪽으로 밀어 떨어뜨리곤 하는데, 그게 언제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커다란 나무가 통째로 쓰러진 것들이기에 다소 어지럽게 보이는 가운데, 개중엔 가지와 잎들이 다 잘려나가고 매끈한 몸통만 단정하게 놓여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게 가로로 놓이지 않고 길을 따라 길게 놓였더라면 앉았다 쉬어 가기 딱 좋은 초대형 원목벤치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아마도 앞쪽의 경사가 깊어 자칫 굴러 떨어질 수도 있어 일단 쓰러진 채로 시간을 좀 갖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런 건 그냥 가볍게 밟거나 건너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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