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인 나뭇가지와 벤치의 사랑법
Posted 2015. 6. 30.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올 상반기 마지막 점심산행으로 모락산 사인암에 올라갔다 내려왔다. 바람이 없어 무더워 물에 적셔간 손수건으로 연신 이마와 목의 땀을 닦아야 했고, 벤치가 보일 때마다 잠깐씩 앉아 거친 숨을 가라앉혔다. 그런데 벤치 풍경이 다른 때와 조금 달랐다.
누가 해 놓았는지 몰라도 비바람에 꺾인 이파리가 달린 나뭇가지를 벤치 가운데에 방석 삼아 깔아 놓았다. 시원해 보이긴 하고 그림은 좀 돼도 막상 그 위에 앉기는 주저할 것 같은데, 조금 차가운 느낌도 들고 색다른 기분도 느끼겠지만, 엉덩이가 물드는 불상사를 감내하기가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이번엔 그렇게 해선 안 되겠는지, 역시 꺾인 가지를 벤치 가장자리 틈새에 살짝 끼워놓았다. 오! 이건 그림이 제법 됐다. 주위에 널린 게 나무요 풀이지만, 벤치 틈새로 피어난듯한 이 가지만큼은 못해 보였다. 며칠을 저리 버틸지 몰라도 그 동안만이라도 여기까지 올라오는 이들에겐 좋은 구경거리가 되겠다.
물론 둘을 놓고 우열을 가린다는 게 우습긴 하다. 이 둘은 각각 잠시 잠깐 좋은 구경거리가 된 걸로 족하지, 꺾인 가지가 늘상 저 자리에 있거나 푸르름과 꼿꼿함을 유지한다는 건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다양하고 다채롭게 지금 이 순간을 빛낼 줄 아는 것만으로도 이들은 그 소임을 넉넉히 했다. 잎들에게 경의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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