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보기 드문 장면
Posted 2015. 8. 22.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기세로 맹위를 떨치던 올여름 무더위도 슬슬 출구전략을
모색하면서 꽁무니를 빼기 시작하는 것 같다. 오랜만에 점심 산책길에 나섰는데, 등산로가
시작되는 아파트 옹벽 아랫길을 삼삼오오가 아닌 삼삼육육으로 걷고 있는 소년들이 보였다.
라운드 셔츠에 반바지, 운동화까지 간편한 또래 패션에 배낭을 매지 않은 게 축구 한 판
하러 가는 건지 PC방에서 오는 건지 모르겠다.
방학에 점심시간이니 으레 있을 법한 조합이었지만, 정말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도시의 아파트 주변에선 일단 아이들이 이렇게 여럿이 몰려 다니는 모습을 보기 어렵고,
등에 학원 가는 배낭을 안 매고 있는 애들은 여간해선 찾아보기 힘들다. 서로 쳐다 보면서
말을 주고 받는 모습보다 혼자 귀에 이어폰 끼고 스마트폰 만지작거리는 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이렇게 느긋하게 어기적거리는 건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 됐다.
초딩 고학년이거나 중딩 1학년쯤으로 보였는데, 둘셋도 아니고 여섯이나 함께 걷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저 안에 껴서 서로 목소리 높이면서 자기 주장도 하고, 옆에서
말하는 걸 그저 듣기만 해도 얼마나 신날까 하는 뚱딴지 같은 생각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제법 넓은 보도를 거의 꽉 채운 소년들의 산만해 보이면서도 위풍당당한 발걸음 앞에
마침 나무 터널이 끝나면서 한낮의 태양으로 밝게 빛나는 숲길이 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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