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의 언어
Posted 2015. 11. 20.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단풍에 이어 낙엽도 한창이다. 사람들은 떨어진 오만 가지 나뭇잎을 도맷금으로 낙엽이라
부르지만, 가까이 가서 살펴보노라면 무엇 하나 같은 모양새가 아니다. 새빨갛거나 샛노랗게
물든 고운 낙엽들은 1등급 대접을 받지만, 대부분은 아예 등외품 취급에 마구 밟히는 운명을
타고 난다. 같은 낙엽도 안쪽 면이 조금 곱고, 뒷면은 이렇다 할 색이나 모양이 없어 영 볼품이
없는데, 그 와중에 약간 튀는 모양새로 눈길을 잡아 끈 낙엽들이 있었다.
통통해 보이는 게 마트에서 파는 새송이 버섯 닮아 보이는 뒤집힌 낙엽은 실인즉 왼쪽으로
가라는 화살표 모양으로 잔디 사이에 얌전히 누워 있었다. 잔디 사이를 유영(游泳)하는 송사리라
부르면 너무 나간 것일 게다. 왼쪽으로 기울긴 했지만 어떻게 보면 양방향을 다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한데, 가운데가 삐죽 길어지는 바람에 균형을 잃고 조금 일찍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커다란 낙엽 가운데는 누가 산에서 떨어진 게 아니랄까봐 뫼 산(山) 자를 굳이 고집하는
것들도 여럿 보였다. 요즘은 한자를 안 배워 아무리 쉬운 한자라 하더라도 획순을 제대로
알고 쓰기보다 대충 상형문자 식으로 그리기 쉬워 맵시가 안 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낙엽은
마지막까지 색으로나 모양으로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 애쓴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나뭇잎 가운데는 좌우가 고르게 자란 것도 있지만, 어느 한 쪽이 조금 또는
제법 크게 자라 불균형을 이루는 것들이 많이 눈에 띈다. 그러면 대개는 미워 보이기 쉬운데,
비교적 괜찮아 보이는 낙엽 한 장이 뒤집힌 채로 나뒹굴고 있었다. 처음엔 오른쪽이 욕심을
부렸구나 싶었는데, 가만히 보니 왼쪽이 고집을 부려 영토를 확장하려다 떨어진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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