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나무 악어
Posted 2015. 10. 17.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새벽에 비가 내린 지난 주말 아침 은고개 엄미리 계곡에서 남한산성 벌봉 올라가는 등산로는 간만의 물기로 주위를 온통 짙고 진하게 채색하고 있었다. 바짝 말랐던 땅은 흙먼지를 일으키지 않아 좋았고, 나무도 모처럼 물기를 머금고 검정색에 가까운 짙은 색으로 계절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었다. 물들어 가는 나뭇잎이나 바닥에 떨어진 잎들도 생기를 되찾은듯 반짝거리기까지 했다.
촉촉해진 산길을 걷는 즐거움을 만끽하다가 다시 악어를 만났다. 나무 악어였는데, 잘라진 단면 지름이 2, 30cm 되는 것들 가운데 한쪽이 벌어지거나 부숴지면서 입 모양을 하고 있는 것들이 종종 길가에 나뒹군다. 이게 악어로 보이는 건 커다랗게 입을 벌려 흙이나 나뭇잎들을 물고 있고, 잘려 나간 가지 남은 부분이 쑥 들어가거나 튀어나온 눈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산에 사는 악어 (3/28/14)
보통은 등산로 한켠에 나뒹굴면서 물 대신 흙이나 한 입 잔뜩 먹고 사는 존재들인데, 가을이 되고 비가 내리면서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분 바르고 헤어밴드 하고 멋을 냈다. 기분이 좋았는지 입을 있는 대로 크게 벌리고 웃고 있었다. 주변에 있는 풀잎들도 보기 좋았는지 한데 어울려 가을비를 반기고 등산로를 화려하게 수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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