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여행2 - 명불허전 복성루 짬뽕
Posted 2015. 11. 3.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좌도(左道), 그러니까 서울에서 경기도, 충청도를 지나면 나오는 한반도의 왼쪽 동네는 전라도인데, 그 맨 위 왼쪽 해안을 끼고 있는 도시가 군산(群山)이다. 차로 지난 적은 몇 번 있지만, 여행은 처음이었다. 군산에 대해 이전에 아는 거라곤 야구 잘했던 군산상고밖에 없었고, 대학부 때 공부 잘하고 지금은 변호사가 된 후배 둘이 여기 출신이고, 그리고는 뉴스에 많이 나왔던 새만금이 있는 동네라는 정도.
뭐 3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군산에 대해 딱히 아는 건 없는데, 얼마 전부터 전국에서 손꼽히는 짬뽕집이 몇 집 몰려 있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듣게 됐다. 우동과 짜장을 밀어내고 중국집의 대세가 된 짬뽕을 끝내주게 잘하는 집이 한 집이 아니라 여러 집이란 소문에 언제 기회가 되면 한 번 가봐야겠다 하던 차에 날을 잡게 된 것이다. 호사가들의 말만 듣고 나선 맛집 순례는 어긋날 때가 많다는데, 과연 여긴 어떨지.
금요일 아침 이성당에서 야채빵을 득템하고, 근처 일본식 가옥들을 돌아보다가 1시가 조금 지나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이 집 앞을 지날 때 작은 식당이 보였고, 벌써 줄이 코너를 돌고 있었다. 줄이 아주 길면 차선책으로 지린성이나 쌍용반점으로 갈 요량이었는데, 이 정도면 한 시간 정도 서 있으면 차례가 오겠다 싶어 대기 행렬에 동참했다. 양쪽으로 내건 간판은 낡고 촌스러웠지만, 빨간 천과 함께 내건 나무 간판은 가오가 있었다.
도시긴 하지만, 먼 데 있는 시골 중국집이 과연 어떤 짬뽕을 낼지 기대 반 호기심 반으로 즐겁게 기다리는데, 생각보다 빨리 30여 분만에 자리가 생겼다. 홀에 테이블 몇 개, 그리고 작은 방이 두 개 있는 동네 식당에 앉아 아내와 나는 짬뽕을, 둘째는 짜장면을 주문했다. 찬과 함께 덜어먹으란 건지 용도가 불분명한 빈 대접이 나왔는데, 나중에 보니 다 이유가 있었다. 5천원 받는 짜장면은 맛이 없는 건 아니지만, 평범했다.
그리고 이날의 주인공, 군산여행의 백미격인 8천원 받는 짬뽕은 과연 명불허전(名不虛傳)이 따로 없었다. 위로 수북하게 얹혀진 고명이 장난이 아닌 게 간만에 눈이 즐거워지고 침샘이 마구 샘솟는 환희의 순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홍합과 오징어 몸통살이 엄청나게 진을 치고 있었고, 그 위로 길게 썰어 불맛 낸 돼지 살코기들이 듬뿍 얹혀 있었다. 비주얼만으로도 극강(極强)의 포스가 느껴졌다.
즐거운 비명과 함께 재빨리 홍합살 분리 작업에 들어갔다. 커다랗진 않아도 족히 30개는 되는 듯한 홍합살 발리고 껍질 모으는 일도 장난이 아니었다. 어느 정도 작업을 마치자 드디어 이 집 짬뽕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웬만한 집들은 오징어를 넣어도 다리 몇 개 넣는 정도인데, 몸통을 두툼하게 썰어 마구 투하하니 모양이 일단 있어 보인다. 게다가 국물 아래로도 홍합이 아직 많이 숨어 있었다.
홍합, 오징어와 함께 바지락에 꼬막까지 조개도 왕창 들어 있는 국물은 시뻘건 고추기름을 넣지 않아 짙은 주황색이었다. 맵지 않았고, 구수한 불맛이 나서 다 먹은 다음 대접째 들이킬 수 있을 정도였다. 보통 이렇게 고명이 충실한 집에선 배가 불러 면은 조금 남기게 마련인데, 오랜만에 남김없이 해치워 주었다.
홍합살의 야들야들한 맛에 오징어의 쫄깃한 맛, 거기에 돼지고기의 씹는 맛에 구수한 국물맛까지 무엇 하나 버릴 게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8천원을 받을만 했다. 군만두는 없고 탕수육은 있었지만, 짬뽕 하나만으로도 충분했다. 전국의 내로라하는 짬뽕집들이 어떤 맛을 보여줄지 몰라도, 이거 다시 한 번 먹으러라도 군산은 충분히 다시 갈 만한 맛의 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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