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여행4 - 군산은 간판이다
Posted 2015. 11. 5.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봄에 순천에 갔을 때, 순천은 자신을 도시가 아니라 정원(5/14/15)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국제습지가 있는 순천만 정원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슬로건으로 내건 거겠지만, 외지인에게 무척이나 신선하게 들리면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군산 시내를 걸으면서 이 도시가 스스로 자임하는 건 아니지만, 내가 본 군산은 간판이다 라는 생각을 줄곧 해 봤다.
맛있는 음식에 입도 즐거웠지만, 초행길의 군산 여행이 좀 더 인상적이었던 것은 거리에서 마주친 간판들 때문이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군산 시내를 전부 돌아다니진 않았지만, 이성당과 고우당, 히로스 가옥과 동국사가 이웃해 있는 골목길을 걷는 내내 간판 상호며 스타일에 한것 매혹되었다. 어떤 이들에게는 별로 특별할 게 없어 보일 수도 있는 게 왜 내겐 유독 강렬하게 다가왔을까.
군산에는 카페와 함께 다방이 여럿 보였다. 다방(茶房), 카페와 커피샵에 밀려 지금은 거의 사라진 이 찻집이 군산엔 버젓이 영업중이었다. 옛 간판이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요즘 스타일로 새로 단 간판도 적당히 잘 어울렸다. 진다방, 이화다방. 이름도 예쁘다. 아직도 저 안에는 마담 언니와 레지들 - 손님에게 차를 따라주기도 하고 말벗도 되어 주고, 마호병 들고 배달도 하던 일하는 언니 레이디(lady)를 우리 식으로 부르던 말 - 이 있을까.
요즘 웬만한 거리는 한 집 건너 치킨집과 커피샵이라는데, 군산 역시 카페가 많이 보였다. 그런데 카페 이름이 참 예뻤다. 그 카페라고 읽어야 할지, 그럭저럭 괜찮은 카페라고 풀 네임을 불러 주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그 동네에 그 카페가 있었다. 이름에 어울리는 손글씨가 카페 주인의 감각이랄까 여유 또는 스타일을 짐작케 한다. 홍차와 국화가 이렇게 잘 어울리는 궁합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었다. 미안하다.
요즘은 남자들도 미장원 아니 헤어샵에서 머리를 자르지만, 예전엔 이발소엘 다니곤 했다. 이발소가 다소 터프하고 원시적인 느낌을 주었는지 종종 이용원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요즘 슬슬 한 집 두 집 다시 부활하는 추세다. 군산에서도 이용원 간판과 빙빙 돌아가는 이발소 표시등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폰트로 봐선 웬지 지리산 청학동 식으로 잘라 주거나, 아니면 뒤로 눕혀 면도 받다가 한숨 자다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다.^^
언제부턴지 포장마차가 실내로 진입하는 게 유행인데, 세월촌이란 포장마차는 술꾼깨나 불러들일 것처럼 생겼다. 너도 나도 스타일을 추구하는 세태에 저항하려는듯 빨간 페인트로 찍찍 그린 간판은 결코 잘 쓴 글씨라고 봐줄 순 없지만, 중요한 건 간판이 아니라 술과 안주 맛 아니겠는가. 없는 거 없이 죄다 만들어 낼 수 있는 심야식당 같은 포스가 느껴진다. 자전거 바퀴를 달아놓은 건 굳이 포장마차 분위기를 내려는 걸까.
우리 사무실 근처 백운호수변에도 콩밭이란 두부요리집이 있는데, 여긴 콩뜰이라 붙였다. 한복을 입은 여인네가 앉아서 메주에 콩을 가는 촌스런 그림까지 그려 놓았다.^^ 수다쟁이 공방은 말로 수를 놓는 게 아니라 손재주가 많은 장인의 집이란 뜻인데, 퀼트를 비롯해 이것저것 만들어 팔고 있었다. 먹고 튀는 먹튀가 많은 세상에서 먹튀 이미지를 바꾸려는듯 먹고 싶은 튀김집도 간판을 내걸었다.
요즘은 타지에 가거나 여행을 가면 호텔이나 모텔 또는 펜션과 게스트하우스에 묵지만, 이런 외래어에 익숙하지 않던 예전엔 으레 여관이나 여인숙에 묵곤 했다. 민박도 있긴 한데, 그 중 여인숙은 가장 싼 값에 하룻밤 몸을 누일 수 있는 허름하고 누추한 숙박시설이었다. 그런데 군산 여인숙은 그런 이미지를 확 깨게 했는데, 창작문화공간 여인숙(與隣熟)은 작가정신으로 충만한 청년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었다.
그 앞에는 과자와 엽서 등을 파는 과자나라 엘리스와 이것저것 연구소가 붙어 있는데, 우리는 오전에 그 골목을 지났던 터라 아직 오픈 전이어서 과자는 구경 못했고, 여인숙에서 약간 그로테스크하고 실험정신 충만한 청년작가들의 작품만 구경할 수 있었다. 연구소 영어 명칭은 What Not Institute인데, 누가 지었는지 몰라도 썩 잘 지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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