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여행7 - 청년전북인 전
Posted 2015. 11. 14.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두 주 전 군산여행에선 이런저런 전시회를 훑어볼 기회가 여러 번 있었다, 사는 동네에선 백만 년에 한 번 가는 게 전시회지만, 여행지에선 비교적 쉽게 하게 되는 게 미술관, 박물관 구경이다. 근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던 군산 출신 추상화가 태건석 기획전을 비롯해 근대건축관, 동국사 대웅전 한 편의 전시물들을 둘러봤고, 골목길에서 만난 여인숙(與人熟)이란 재밌는 이름을 내건 작은 창작문화공간에서 열리고 있던 <청년전북인> 전도 살펴볼 수 있었다.
여인숙은 밖에서 보기엔 2층으로 된 작은 옛날 건물이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 공간을 제법 아늑하게 잘 꾸며놓아 편안하게 감상할 수 있게 돼 있다. 무료관람인데다 조금 이른 시간이어선지 데스크에 아무도 없어 맘껏 구경할 수 있었다.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비슷한 테마와 색조의 커다란 두 작품이 먼저 눈을 끌었다. 동화책에 나올 법한 그림의 원화 느낌을 주었다.
두 그림 중앙에 있는 동일 인물로 추정되는 소녀를 클로즈업해 찍어 봤다. 전체 그림도 아름답지만, 맨발로 풀숲을 거니는 소녀의 동작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의도적으로 소녀의 얼굴을 윤곽만 그린 것 같은데, 표정이 보이진 않지만, 몇 분 더 그 앞에 서 있다간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아늑한 느낌을 전달받았다.
사실 그림을 잘 모르는 내가 애정하는 스타일은, 큰 스케일은 아니지만 공간미를 살린 판화나 일러스트들이다. 딱 그런 스타일을 추구하는 작은 액자들이 몇 개 걸려 있었는데, 집으로 가는 길 연작(連作) 느낌을 주는 이 소품들은 화려한 컬러나 거창한 문제의식 없이도 작품 세계를 펼쳐갈 수 있다는 저비용 중효율 작품성을 보여준다. 아무 것도 걸려 있지 않은 빈 벽면에 함께 걸어두고 가끔 쳐다 보면 많은 생각이 피어오를 것 같다.
청년작가전 치곤 좀 얌전한데 했는데, 안쪽에 오픈된 방으로 된 전시공간이 두세 개 있고, 그 중 한 방에 이 전시회 타이틀과 어울리는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청년, 도무지 앉아 있을 수 없고, 무엇에든 반항하고 싶고, 조화니 절제니 균형이니 하는 거추장스러운 꼰대들의 가치관을 훌훌 내벗어던지고, 주체할 수 없는 저항정신을 날것 그대로, 그리고 싶은 대로 표현한 약간 음산하고 그로테스크한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발라드와 포크 음악을 듣다가 하드 록 기계음으로 쩡쩡 울리는 방에 들어온 것 같았는데, 문자 그대로 골 때리는 그림들이었다. 어쩌면 이런 서로 다른 세 스타일의 그림에 청년들의 취향과 시대 정신이 오롯이 반영된 것 같아 흥미롭게 구경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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