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여행5 - 군산은 역사다
Posted 2015. 11. 6.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군산은 사실 일제시대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역사 도시다. 100여 년 전 조선을 합병한 일본은 쌀을 비롯한 농수광산물을 엄청 수탈해 갔는데, 곡창 지대인 호남 일대의 미곡을 바닷길로 해서 섬나라로 가져 가는 항구와 은행 등 제반 시설이 발달했던 군산은 일제의 거점 도시 가운데 하나였다. 내항 주변에 일제 시대 주요 건물들이 온전히 남아 있거나 내부를 다른 용도로 쓰면서 그 당시의 영화를 짐작케 했다.
전형적인 일본 관청 모양을 하고 있는 이 붉은 벽돌 건물은 1908년에 준공된 군산세관이었다. 유럽에서 붉은 벽돌과 건축자재를 수입했다고 한다. 오른쪽엔 현재의 군산세관 건물이 새로 지어졌는데, 척 봐도 건물의 격조나 아름다움에서 쨉이 안 된다. 아픈 역사를 안고 있긴 해도 일본애들이 건물 하나는 앗쌀하게 잘 지었던 것 같다.
지금 군산엔 일제시대 때 은행으로 쓰던 건물 두 개가 남아 있는데, 창살이 예쁜 측면을 찍은 위 사진은 1907년에 세워진 일본 제18은행 군산지점으로, 지금은 근대미술관으로 쓰인다. 아래 붉은 건물은 1922년에 준공한 일제 식민지 금융의 본산이었던 지금의 한국은행 전신인 조선은행 군산지점인데, 근대건축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서울에 있는 본점과 같은 해에 지어졌다니, 당시 군산의 금융경제적 위세를 짐작할 수 있다.
군산 시내 신흥동에는 일본식 가옥이 여러 채 남아 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게 미곡 유통을 하던 히로쓰 가옥이다. <장군의 아들> <타짜>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를 여기서 찍었다고 한다. 1층에만 6개의 온돌방과 부엌, 식당, 창고, 다다미방 1개씩과 화장실 2개가 복도로 연결돼 있다고 한다. 내부는 개방하지 않아 더 볼 순 없지만, 외관과 정원만으로도 당대 부유층의 살림살이를 짐작케 해 주었다.
군산엔 국내 유일의 일본식 사찰도 있는데, 동국사가 그 주인공이다. 1913년 일본 승려 우치다가 세운 이 절은 지붕 물매의 급경사가 첫 눈에 띌 정도로 외관이 우리네 사찰과는 확연히 달랐다. 에도시대 건축 양식으로 지어졌다는 대웅전을 개방해 미닫이문을 밀고 들어가 보니, 효종 원년(1650년)에 조성했다는 소조석가여래 삼존상(보물 1718호)을 비롯해 이런저런 유물들이 유리창 안쪽에 진열돼 있었다.
명성황후 시해 시기에 일본 공사로 있었던 미우라의 서예 작품도 있고, 불승들의 승적부 책자도 보였는데, 뜻밖에도 시인 고은 선생이 이 절에서 출가했다는 걸 알려주는 백자 항아리도 볼 수 있었다. 만약 선생이 혹시 죽기 전에 노벨문학상을 탄다면 화제가 될 듯 싶었다.
동국사 전시물 가운데는 각종 기관과 단체들이 내걸었던 옛날 표어들을 한데 모아 놓은 것도 있었다. 조선총독부와 <산에 가는 저 등산객 간첩인가 다시 보자> 같은 정부 부처에서 만든 것과 함께 조선인민위원회 것도 보였는데, 그 중 압권은 애국청년회란 데서 내건 <매국노는 상가집 개만도 못하다>였다. 이런 가오가 우익(右翼)이지, 작금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주장은 명분도 원칙도 박약한 치졸한 포퓰리즘에 다름 아니다.
문화창작공간 여인숙에서 하는 과자가게에선 희한한 물건을 팔고 있었는데, 아마도 건물이 지어진 1938년부터 케케묵은 76년 동안의 먼지를 판다는 코믹한 광고문구였다. 대동강물 팔아 먹었던 봉이 김선달도 아니고, 이쯤 되면 대단한 강심장들이 아닐 수 없다.
군산을 배경으로 하는 대표적인 소설은 채만식(1902-1950)의 1937년작 <탁류 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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