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여행9 - 짧은 시
Posted 2015. 11. 16.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하루이틀 여행
군산 어느 골목길 담벼락에 하상욱의 단편시 몇 편이 낙서처럼 적혀 있었다. 많이 알려진 <애니팡>과 함께 분위기가 비슷한 <옆사람 카톡>도 보였다. 둘 다 시의 한 구절을 적은 게 아니라, 이게 전부다. 애걔걔, 이게 무슨 시야, 하는 분들은 너무 생각이 많으시거나, 아니라고 우겨도 나이가 제법 드신 고지식한 분들이다.^^
시는 아니지만 얼마 전엔 메르스 사태를 빗대 SNS - 우린 Social Network Service를 줄여 이렇게 쓰는데 Social Media로 써야 알아 듣는다고 한다 - 에 올린 글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혼자 살겠다고 마스크 쓰는 거 아니에요. 같이 죽겠다고 그냥 다니는 거 아니듯이." 끝내주고 죽여주는 시다. 이런 게 시가 아니라면 도대체 뭐가 시란 말인가.
멋진 카피 문구처럼 보이는 이런 싯구들은 장난스럽기도 하고 천진난만한 상상력이 엿보여 마치 아이들이 쓴 동시 같아 보이기도 하는데, 촌철살인(寸鐵殺人)이 따로 없는 이런 시도 단편시 범주에 들어간다고 한다. 꼭 5, 7, 5의 3구(句) 17자로 구성되는 일본의 단시(短詩) 하이쿠(haiku, 俳句)를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유쾌한 기분으로 골목을 걷는데, 마침 그 근처 카페 한 구석에 잘 알려진 하이쿠 한 수를 멋진 그림과 함께 적어 놓은 게 눈에 띄었다. 에도 시대 하이쿠 작가 고바야시 잇사(小林一茶, 1763-1827) 작품인데, 몇 해 전 광화문 교보빌딩 외벽 글판에도 크게 내결린 적이 있었다. 봄비 내릴 때 봤다면 더 와 닿았겠지만, 깊은 여운을 남기는 덴 굳이 길 필요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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