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에 대한 예의
Posted 2016. 3. 16.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모락산 올라가는 길에 나무 한 그루가 옆으로 기울어 있다. 밑둥이 베여 2, 30도 정도
기운 채 위태로워 보였지만 다행히 쓰러지다가 옆에 떨어져 있는 나무 가지에 몸을 의탁하고
완전히 쓰러지진 않았다. 작은 나무도 아니고 10여 미터는 족히 넘는 나무인데, 어쩌다가
이런 신세가 됐는지 모르겠다.
추측컨대 이유는 한 가지. 주변 나무를 살리기 위해 너무 가까이서 자라는 이 나무를
내친 것 같았다. 심을 땐 몰랐는데, 자라면서 보니 두 나무 간격이 1미터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붙어 있어서 숲 생태계의 균형 잡힌 성장을 위해서 가지치기하듯 밑둥을 잘랐는데,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이쯤 되면 아예 베어버리고 쓰러뜨려 다른 나무들처럼 밑둥만 남겨두어야 할 것 같은데,
일손이 모자라서인지 애매하게 방치된 채 베인 부분이 슬슬 바스라지고 부서지고 있었다.
게다가 옆으로 기운 채 밑에서 1미터 정도는 두꺼운 껍질이 벗겨지면서 속살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데, 조금 잔인해 보였다. 이미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니어서 언제까지 저리 서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쯤 되면 차라리 넘어지고 엎어지는 게 속 편할지 모르겠다.
나무에 대한 예의가 아닌듯 싶어 나라도 나서 수습해 주고 싶지만 마땅한 도구도 없고,
자칫 사연을 모르고 지나가는 이들에게 백주 대낮에 벌목꾼이나 자연 훼손으로 이상한 눈길을
받을지 모르겠기에 그냥 몇 주간 지켜보고만 있다. 뭐 그냥 놔 둬도 아주 이상해 보이진
않는데, 그래도 기왕 이리 된 거 말끔히 정리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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