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창길
Posted 2016. 3. 9.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아직 본격적인 봄이 온 건 아니지만 3월 들어 영하권에서 벗어나고 낮기온이 15도
안팎을 기록하자 얼어 있던 산길이 풀리기 시작했다. 눈길로 얼어 붙어 있을 땐 미끄럽긴
해도 아이젠을 끼고 걸으면 그리 부담스럽진 않았는데, 이즈음의 산길은 군데군데 진창을
이루면서 자칫 발을 헛딛기라도 하면 찍찍 미끄러지기 십상이고, 한 번 넘어지면 옷에도
진흙이 크게 묻어 영 낭패가 아닐 수 없다. 2년 전의 진창길 산행 (3/6/13)
이럴 때 요긴한 도움을 주는 게 수북히 쌓인 낙엽들이다. 낙엽도 물기를 머금고 있어
미끄럽긴 해도 잘 살펴 두터이 쌓인 델 밟으면 비교적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 누가 일찍
일어나서 쓸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굴러다니던 낙엽들이 길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게
이럴 땐 나무 계단길과 더불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러나 산길이 다 이럴 순 없어 곧 낙엽들이 쓸려나가 맨땅을 이루고 경사진 미끄러운
길이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다. 나무 뿌리들이 드러난 흙길은 고동색과 황토색의 진흙이
되어 다음 발을 내딛을 틈을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딱히 잡거나 의지할 로프도 안 보여
나무를 붙잡고 세단뛰기하듯 걸음을 빨리 옮기게 만든다. 올라갈 땐 그래도 어찌어찌
해 보지만, 내려올 때의 난감함이 그려져 이쯤에서 내려가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낙엽 쌓인 길과 나무 뿌리 드러난 길로 어찌어찌 요리조리 걷는 건 그래도 양반인데,
마침내 꼼짝없이 질퍽거리는 진창길에 발을 딛어야 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미 누군가
걸음을 내딛다가 찌~이익 미끄러진 흔적이 남아 있고, 새겨진 발자욱 위로 얼었던 땅이
녹으면서 생긴 물로 차마 발걸음 떼기가 망설여지는 진퇴양난 구간이다.
악전고투까진 아니어도 정말 눈에 불을 켜고 그래도 덜 진 데를 이잡듯 찾아 잽싸게
걸음을 옮겨보고, 괜찮으면 같은 요령으로 다음 발도 살금살금 떼 본다. 마음이야 어서
빨리 이 곤경을 벗어나 평지에 내려가 신발창이며 바지단에 묻은 흙을 털어버리고 싶지만,
산을 오르는 것과 마친가지로 진창을 벗어나는 지름길은 애시당초 없다. 마른 땅과
마찬가지로 그저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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