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토의 꽃대궐
Posted 2016. 5. 19.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Oisii Japan교토 철학의 길을 걷다 보면 길 자체도 조용하고 수수한 느낌으로 편안하게 다가오지만, 주변에 있는 잔잔한 주택가 풍경들에 자연스레 시선이 간다. 처음엔 조금 차갑다 싶을 정도로 깔끔하고 깨끗한 인상을 받지만, 이내 말을 건네며 눈을 맞춰 오기 때문이다. 거의 대부분의 집들이 집앞 대문이며 창문과 담벼락 그리고 길가에 꽃화분과 나무를 소담하게 늘어 놓고 있는데, 이들을 도저히 안 쳐다볼 수 없게 만든다.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일본인들이 왜 집앞엔 이렇게 꽃화분들을 늘어놓는 걸까? 화분도 일종의 취향이나 취미 생활이므로 사생활에 속하는 거라 집안에 두어야 할 것 같은데, 왜 집밖 거리에 내놓는 걸까? 단지 집 안보다는 바깥이 햇볕과 바람을 잘 받기 때문일까? 집이나 마당이 좁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집밖까지 진출한 걸까? 아니면 이웃들과도 이 좋은 풍경을 나누고 싶어 하는 공동체 정신의 발로일까?
꽃화분을 문앞에 늘어놓는 건 집 크기완 무관해 보였는데, 그것도 못 생긴 화분 한두 개 내어놓는 게 아니라, 화원을 방불케 하는 화사하고 풍성한 꽃들의 향연을 지나다니는 이들 누구에게나 보란듯 차리는 것 같았다. 아기자기 오밀조밀 꽃화분을 늘어놓고 가꾸는 집앞을 지나노라면 꽃대궐 저 안엔 누가 살까 하면서 살짝 부러운 마음에 절로 눈길이 가고 걸음을 멈춰 가까이 다가서게 만드니, 환대가 따로 없어 보였다.
담이 높은 집도 벽돌만 쌓아 놓지 않고 일정 간격으로 화분을 걸어 놓아 단조로움을 피하고 있었다. 저 담벽에 꽃이 없을 때와 비교해 본다면 얼마나 큰 차이가 느껴지는가. 물론 이런 꽃단장이 꼭 누군가에게 보이기 위한 것만은 아닐 것이다. 남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자신들을 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우중충하게 방치했다간 지나다니는 이들에게는 물론 자신들부터 보기 싫어지기에 이랬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엔 너무 계산적인가.
집앞에 내놓고 기르는 화분이 꼭 꽃나무들만 있는 건 아니다. 오사카 에비스초 역 근방의 주택가에도 많은 화분들이 집밖에 나와 있었는데, 꽃화분도 중간중간 보였지만, 우리가 보통 집이나 베란다에서 기르는 화초들이 대부분이었다. 다만 이 많은 크고 작은 화분들이 행인과 차량 통행엔 불편을 끼치지 않겠다는 듯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다는 게 내가 가 본 도쿄나 오사카, 교토 어디를 가나 공통적으로 보이는 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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