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거절
Posted 2016. 5. 22.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Oisii Japan
교토 철학의 길에서 청수사 가는 버스를 타려고 주택가를 지나는데, 어느집 앞에 하얗고 보라색 꽃이 활짝 핀 하얀색 키 작은 화분 하나를 앉힌 이동식 미니 바리케이트가 눈에 들어왔다. 바리케이트라기보다는 바퀴 달린 소형 빨래 건조대 같았는데, 문앞 타일 위에 세워놓으니 그리 보인 것이다. 위에는 주차금지를 알리는 영어 팻말 하나가 고리에 걸려 있었는데, 생김새로 봐서 고정돼 있지 않고 바람이 불면 앞뒤로 그네를 탈 것처럼 보였다.
문 모양새나 그 안의 주택들을 볼 때 주변 주택들에 비해 조금 좋아 보였는데, 출퇴근 또는 입출입하는 차들의 통행에 지장을 주는 다른 차들의 주차를 하지 말아달라는 표시였다. 보통 이런 데 세워 놓는 팻말은 약간 위압적이고, 보는 이들로 하여금 치사해서라도 안 세운다는 느낌이 들게 만드는데, 그런 느낌은 안 들고. 그저 스미마셍~ 정도로 읽혀졌다.
일단 세워 놓은 구조물이 앙증맞고, 주차금지라는 글자도 지나치게 크지 않고, 무엇보다도 꽃화분을 살짝 놓음으로써 보호받고 싶다는 걸 간접적으로 어필하는 센스가 느껴졌다. 주차를 하지 말아달라는 당연한 요구를 하면서도 보는 이들의 기분을 얹짢게 하지 않으려는 배려 같은 게 느껴졌는데, 조금 오버해서 표현하자면 아름답게 거절하는 일종의 부자의 품격 같은 게 읽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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