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나무 그늘
Posted 2016. 7. 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주일예배 전에 습관처럼 잠깐씩이라도 들리곤 하는 대광고 교정 한구석엔 미니 공원이 있는데,
그 중심에 햇볕과 눈비를 피할 수 있는 넓다란 사각 정자가 있다. 이 지붕은 이중으로 되어 있는데,
목재와 기와로 반듯하게 만든 위를 등나무 가지와 이파리들이 두텁게 덮고 있다. 제법 넓다란 지붕 위를
켜켜이 뒤덮을 정도로 등나무 이파리들의 위세가 만만찮은데, 이 정도면 등나무가 몇 그루는 되겠다
싶지만, 한쪽에서 자라고 있는 한 그루에서 비롯된 것에 경탄하게 된다.
재밌는 것은, 자세히 보면 한쪽 구석에 멋드러지게 휘어져 자란 등나무가 올라가는 자리를 처음부터
비워놓고 지붕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렇게나 잘 자라고 번식하는 등나무도 대단하지만, 언젠가 이런
모습이 되리란 걸 그리면서 지붕을 만든 이들의 경험적 안목이 함께 어울어진 결과다. 그래서 그런지 인공과
자연의 이중지붕 아래 사방으로 놓여 있는 벤치에 앉으면 더 두꺼운 그늘이 생기는 것 같고, 한낮의
안식처가 따로 없다(물론 바람이 안 부는 여름철은 후덥지근해 별로 앉는 이들이 없지만^^).
등나무는 보통은 5월에 연보라색으로 길게 늘어지는 꽃을 피운다는데, 7월 초에도 몇 군데 남아
있는 걸 보니 오래 가는 모양이다. 아마도 그 전에도 피어 있었을 텐데, 계속 가지를 치는 무성한 푸른
이파리들 사이에서 보색에 가까운 연보라색 꽃을 못 봤던 것 같고, 여기에 가는 시간대가 2시 조금
전이라 한낮의 밝은 햇볕 아래서 눈이 부셔 미처 고개를 들고 바라볼 엄두를 못 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