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중한 정중동
Posted 2016. 12. 5.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Joy of Discovery청와대 목전까지 진출한 토요일 오후 길바닥에 한참을 앉아 외치다 보니 지난 가을에 안 좋았던
허리가 슬슬 걱정이 돼 일어나서 주변을 거닐었다. 길마다 오고 가는 사람들로 가득 차다 못해 떠밀려들
가고 있어 1, 20m를 이동하는데도 한참이 걸렸다. 골목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5시가 가까워오면서
잠시 추운 몸을 녹이려 커피 한 잔 하려는 이들, 밤 시간까지 버티기 위해 간단한 저녁식사를
하려는 이들, 이제 막 합류하는 이들로 뒤섞여 북새통을 이루었다.
마침 바로 옆 골목이 서촌의 명물 통인시장인지라 시장도 구경할 겸 그리로 갔다. 시장은 이미
미어터지고 있었는데, 이 시장의 명물 기름떡볶이집들은 물론이고, 주전부리를 할 수 있는 가게마다
줄이 길었다. 중간쯤에 잡곡 파는 가게가 있는데, 문은 열었지만 이런 날 장사가 될 리 없다는듯
한산했는데 안을 들여다보니 할머니 세 분이 둘러앉아 오락을 하고 계셨다.^^
민화투를 하시는 겐지, 아니면 좀 더 스릴 넘치는 고스톱을 치시는 건지 모르겠지만, 두 분은
마스크까지 착용하고 다리도 의자 위에 쭉 뻗고 세상 편한 자세로 오후의 무료함을 달래고들 계셨다.
세 분 가운데 누가 땄는지 알 수도 없지만, 사실 그건 중요하지 않다. 오락 삼매경에 혹여라도 가게를
찾는 손님은 어떻게 맞으실까 싶었지만, 가게 앞에 누르면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장치도 있고,
원래 시장이란 게 내 가게 네 가게 할 것 없이 서로 봐 주는 거니까 괜한 걱정이었다.
시장을 찾는 나같은 이들이 망중한(忙中閑)을 즐겼다면, 시장의 터줏대감들이신 이분들은
정중동(靜中動)을 누리고 계신 셈인데, 수십 년 청와대 부근 이 시장에서 장사해 오신 이분들은
작금의 사태를 어떻게 보고들 계실까. 좋은 물건을 낼 줄 알고, 수많은 단골들과 허물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이분들이야말로 세상 돌아가는 시세(時勢)를 누구보다 정확히 짚고 계신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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