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ee Food for Needy
Posted 2017. 12. 24.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Kiwi NewZealand올해 뉴질랜드에 도착해 처음 먹은 음식은 인도 카레였다. 주일 정오 공항으로 마중 나온 해인이가 테이크 아웃 해 갈 시켜둔 음식이 있다며 인도 음식점 파라다이스로 안내했는데, 거리 분위기도 리틀 인디아 같은 데 자리 잡고 있었다. 안에 들어가니 다양한 커리통들과 탄두리 치킨이 눈길을 끌었고, 빽빽한 메뉴판엔 종류를 알 수 없는 다양한 인도 음식들이 길게 나열돼 있었다.
런치 박스가 $8, 오늘의 스페샬이 $10로 저렴했는데, 이것 저것 고르면 몰라도 하나하나의 가격은 10달러가 넘는 게 잘 안 보여 싸고 맛있고 푸짐한 식당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주일 점심 시간이긴 해도 줄 서 있는 사람들이 많았고, 자연히 식당엔 기분 좋은 활기가 넘쳐 보였다.
무심한 표정으로 화덕에 난을 굽고 있는 쉐프에게서 오래된 내공이 읽혔고, 깔끔하게 정돈된 주방 설비에선 식당의 자존심이 풍겼다. 파라다이스 식당에서 무엇보다 인상적었던 건, 한 쪽에 마련된 음식 찬장 안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도시락 모양의 두툼한 커리 상자와 그 위에 적힌 문구였다. 놀랍게도 필요한 사람은 누구나 한 상자씩 가져가라고 써 있었는데, 모르긴 해도 이렇게 나가는 것만 해도 수백통은 되지 않을까 싶었다.
어떻게 영리를 추구하는 상업 레스토랑에서 이렇게 어려운 사람들을 배려하는 자비와 긍휼을 거의 무제한으로 실천할 수 있는 걸까. 돈을 주고 사 가는 사람들 옆에서 어려운 형편에 기 죽지 않고 당당하게 꺼내 갈 수 있도록 마련된 음식 찬장은 모르긴 해도 레스토랑을 시작하면서부터 수익을 나누려는 목적으로 원래부터 고안된 것이 아닐까. 문득 이 찬장이 웬만한 교회의 강대상보다도 힘이 있고, 약자들에게는 일상의 은혜를 경험하는 지성소이겠거니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영악하기도 하지만 공정하기도 해서 이런 식당을 알아본다. 실제로 이 식당은 영업이 잘 돼서 근처에 뷔페 식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는데, 사필귀정(事必歸正), 정도경영(正道經營)의 모델 케이스로 음식 사업을 많이 하는 이랜드 같은 데서 진작에 배워 실천했어야 할 원칙 또는 정책이 아닐까 싶었다. 부럽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이네들의 슬로건이었다.
해인네 집에서 몇 년 못 본 해인 부부와 폴 부부 그리고 그새 생긴 두 가정의 아이와 반가운 해후를 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세 종류의 커리를 맛 봤다. 앤티크한 취향의 신혼집 그릇에 옮겨 담긴 버터 커리를 비롯한 정통 인도 커리는 강렬한 맛과 향을 혀끝에 선사했고, 열흘간 머물 뉴질랜드에서 이렇게 맛난 음식을 나누는 것처럼 좋은 일이 많을 것이란 예감을 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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