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상해도 예쁘다
Posted 2018. 1. 12.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12월에 강추위가 몰려온 이후론 체감온도가 한겨울로 깊숙이 내려가는 바람에 올 겨울엔 점심
산책도 뜸했고, 주말 산행은 개점휴일이 계속되고 있다. 토요일과 주일 새벽 미명에 산에 올라 뒤늦은
새해 일출을 볼까 싶다가도 도통 엄두가 안 나 지레 포기하길 여러 번이다. 슬슬 몸을 추슬러야겠다
싶어 주초에 점심 때 사인암까지 천천히 갔다 오는 걸 재개했다. 중간에 벤치에 앉아 숨을 돌리는데,
흐린 하늘을 배경으로 실핏줄 같이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약동하고 있었다.
상수리나무로 추정되는 참나무 여러 그루가 이파리와 낙엽들을 다 떨군 채 강추위와 눈보라
속에서 의연하게 서 있었다. 앵글을 이리저리 돌려보니 비슷비슷한 풍경이지만, 조금씩 다른 모습을
연출해 주었다. 촘촘하게 잔가지가 밀집해 있는 구간과 나무들 사이로 빈 구석과 열린 공간이 채우고
비우기를 반복하면서 어느 것 하나 압도적이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여백과 더불어 설경에 준하는
겨울 풍경을 보여주고 있었다. 양평 백운봉의 그림같은 겨울나무들 (12/18/13)
각도를 달리하며 바라보는 풍경은 생각보다 지루하지 않았는데, 땀이 식으면서 한겨울 벤치엔
한기가 밀려오면서 그만 보고 일어나라고, 다음에 다시 바라봐도 그대로 있겠노라며 등을 떠밀었다.
비슷한 풍경이 겨울 내내 기다리고 있겠지만, 오늘 느낀 감흥을 다시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같은 자리에서
같은 풍경을 바라봐도 느낌이 영 다르고, 심지어 아무렇지 않을 때도 많지만, 그래도 추위 핑계대지
않고 걸어 올라왔기에 잠시나마 상념에 잠길 수 있으니, 이렇게 계속 올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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