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의 표정과 산의 정령
Posted 2018. 1. 28.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작년 11월 중하순에 다녀 온(11.18-28) 뉴질랜드 이야기로 해를 넘기면서 두어 달 뽕을 빼고
있다 보니^^ 그 전에 예약을 걸어두었던 것들이 계속 딜레이 되면서 해를 넘기고, 계절도 풍경도
달라져 조금 구색이 안 맞게 돼 몇 개는 아쉽지만 삭제했다. 그래도 작년 가을 이성산성 가던 길에
만난 돌무덤 위에 서 있던 돌비는 그냥 버리기 아깝고, 그 새 다른 돌들이 쌓이면서 모양이
달라질 가능성도 있어 올려본다.
올라갈 땐 별 게 없어 무심코 지나갔는데 내려올 때 보니 돌에 사람 얼굴이 새겨 있었다. 미소만
살짝 띠고 있는 건지 파안대소하는 건지 그 익살스러운 표정에 절로 미소가 전염됐다. 하여간에 종종
산객들이 연출하는 센스며 해학 그리고 재주와 정성은 못 말리는 구석이 있는 것 같다. 산에선 몰랐는데
사진을 가만히 보노라니, 윗쪽의 갈라진 얼굴 아래로 왼쪽에 좀 더 활짝 웃는 또 다른 얼굴이 보였다.
곰곰 뜯어보면 더 많은 얼굴을 찾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이 정도면 족하다 싶었다.
산에 다니다 보면 나무들과 함께 돌에도 표정이 있다는 것, 그래서 어쩌면 돌에 생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뜬금없는 생각을 아주 가끔 할 때가 있다.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정령숭배(animism), 자연숭배냐
할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순간적으로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돌의 표정 같이 손에 잡히고 형태가
있는 것만 아니라, 아주 가끔은 보이지 않는 무형의 산의 정령 같은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가령 혼자 산길을 오르고 있는데, 불현듯 뒤에서 누군가가 계속 따라온다는 느낌이 들어 뒤돌아보기
직전의 그 조마조마하고 쿵쾅거리는 심장박동 소리 같은 걸 느낄 때 말이다. 멀쩡하던 날씨가 갑자기
돌변하면서 비라도 후두둑 뿌리기 시작하면 순간적으로 오싹 느껴지는 한기 같은 것도 그렇다. 심호흡을
하면서 눈을 감았다 뜨면 결국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판명되지만 그 순간은 분명히 뭔가 있었던 것
같은 그런 느낌을 받을 때가 가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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