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의 사인
Posted 2018. 11. 2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책
땅에 떨어져 굴러다니고 이리저리 쓸리고 발에 밟히면서 찢기기도 하고 비에 젖어 사그라들기도
하고 땅속으로 흡수되기도 하는 낙엽들 가운데 하나가 그냥 이대로 사라져 갈 수 없다는 듯이 뒷면에
이름을 새겨놓았다. 도드라져 보이는 게 영락없는 사인이었는데,. 비록 나뭇가지로부터 떨어졌지만
존재감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 같았다. 이런다고 누구 하나 알아봐 줄 리 없지만 그래도 자기
존재를 마지막 순간까지 유지하고 꾸미고 싶은 본능적 발로인지 모르겠다.
낙엽이 남긴 사인은 크기나 스타일이 마치 화가가 그림을 다 그린 다음 마지막 사인을 한 것처럼,
서예가가 낙관을 직은 것처럼 그럴듯해 보였는데, 뭐라고 썼는지 가까이 가서 살펴봤다. 안타깝게도
자기만의 고유 언어나 표식인 듯 정확하게 파악되진 않았지만, 대충 짐작은 됐다. 떨어진 날짜를
썼거나, 머물던 나뭇가지 위치 정보, 아니면 나무 이름 정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뭐 아니어도
이런 흔적을 남긴 것 자체만으로도 남다른 나뭇잎임은 분명해 보였다.
'I'm wandering > 동네산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목련나무 겨울눈 (0) | 2019.01.06 |
---|---|
어떤 이심전심 (0) | 2018.11.24 |
크고 동그란 낙엽 (0) | 2018.11.22 |
물을 먹고 자란다 (0) | 2018.11.15 |
가을에도 푸르스름하구니 (0) | 2018.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