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 전용잔
Posted 2019. 1. 18.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몇 해 전부터 일주일에 한두 번 집에서 맥주를 마시다 보니 전용잔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 대형 마트에서 전용잔을 끼워 파는 패키지로 두어 개 구비해 두었다. 몇 년 쓰다 보니 깨진 것도 있고, 새로 생긴 것도 있는데 길쭉하고 날렵해 500ml 캔 하나를 거뜬히 담아내는 Weihenstephan 전용잔은 일단 꺼내 놓기만 해도 가오가 선다. 단점은 아랫쪽이 좁아 닦을 때 수세미가 잘 안 닿는다는 건데, 뭐 기름 묻은 것도 아니고 몇 번 흔들어 주면 된다.
이렇게 저렇게 모양이나 크기도 다양한데, 최근에 득템한 건 가을에 g네 집에 겨울옷 가져다 주는 길에 전용잔이 몇 개 보이길래 하나 달라고 해서 가져온 것이다. 망원동 보틀샵 위트위트(Wit Wheat)에서 사은품으로 만든 건데, 평범한 모양새지만 괄호 안에 맥주 관련 가벼운 단어를 열거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무엇보다도 가볍게 마실 수 있는 300ml 정도를 담을 수 있어 내 주량과 잘 맞아 맘에 든다.
우리집에서 가장 오래된 건 2001년 미국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이 시애틀에서 열렸을 때 기념품으로 나온 거다. 이렇다 할 모양새 없이 전형적인 미쿡 맥주잔이지만, 올스타전 로고를 새겨 역시 가오가 있다. 그해 여름 시애틀에 사는 누이집을 가족이 방문했는데, 무슨 이야기 끝에 야구 얘기가 나오면서 우리가 귀국한 뒤 매형이 사서 누이가 보내온 선물이다. 4개 세트인데, 20년 가까이 되도록 하나만 깨지고 아직 3개를 잘 쓰고 있다.
가장 최근에 장만한 건 연말 세일에 들어간 스타필드 와인 앤 모어에서 독일 맥주 아잉어 셀레브레이터 도펠복(Ayinger Celebrator Doppelbock) 3병+전용잔 패키지(2만2천원)로 산 건데, 맥주맛 못지 않게 생긴 것도 근사하다. 아잉어는, 그 중에서도 도펠복은 맛이 뛰어나 우리집 여자들이 좋아하는데(내 입맛엔 so so), 9천원대로 평소엔 구경만 하다 간만에 질렀다. 전용잔 패키지가 아니었으면 안 샀을 텐데, 확실히 견물생심은 지름신을 부르는 첩경이다.^^
맥주잔이나 전용잔이나 모양이며 개성도 중요하겠지만, 사실 더 중요한 건 어떤 맥주를 담느냐일 것이다. 딱 어울리는 맥주와 잔이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동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상의 맥주를 담아내는 무던한 역할을 나름 잘 감당하고들 있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잘 생긴 맥주잔은 평범한 맥주맛을 2%쯤 업그레이드시키지 않을까 싶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큰 욕심 없이 눈여겨 봐 두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