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벤치
Posted 2019. 4. 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동네산행
산길을 걷다 보면 종종 등산로 주변에 쓰러져 있거나 부러져 있는 나무들을 보게 된다. 태풍이나 강풍에 흔들리다가 뿌리째 뽑히다시피 쓰러진 것도 있지만, 간혹 너무 촘촘이 심겨 주위에 있는 나무들의 성장에 방해가 되는 경우 밑둥만 넘기고 베어버린 것들도 볼 수 있다. 덜 자라서 힘을 받지 못한 나무도 있지만, 10미터가 넘게 다 자란 것들 가운데도 외부의 충격으로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있는 것들도 있다.
쓰러진 나무들은 대개는 골짜기 쪽에 모아놓거나 옮기기 쉽도록 잘라서 쌓아놓는데, 개중에 어떤 것들은 벤치로 재활용되기도 한다. 검단산 샛길 등산로를 오르다 보면 평평한 지점이 나타나는데, 서 있는 나무들을 배경 삼아 쓰러진 나무로 길다란 벤치를 만들어 놓은 게 눈길을 끈다. 거의 열 명이 앉기에 충분해 보이는데, 흔들리지 않도록 양끝을 줄과 끈으로 묶어 고정시키기도 하고 중간중간 돌로 궤어 놓기도 해서 보기보다 안정적이다.
중간쯤에 잠시 앉아보니 생각보다 편했다. 햇볕이 잘 드는 데라 한여름보다는 요즘 같은 봄날이나 가을에 앉아 잠시 호흡을 고르기 좋은 곳이었다. 문득 부러지거나 뽑히지 않고 원래 자리에 서 있는 것도 좋겠지만, 이렇게 재활용되는 운명도 이 나무에겐 괜찮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순전히 나무의 입장에서보다는 바라보고 이용하는 등산객 눈높이에서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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