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동 동문 번개 모임
Posted 2019. 5. 2. 00:00, Filed under: I'm churching/더불어 함께
미국 볼티모어에서 목회하는 이성주 선배가 잠시 귀국해 연락이 되고 시간이 되는 그 시절 내수동 대학부 동문(58-61그룹) 십여 명이 화요일 점심 시간 번개를 했다. 이런 일, 그러니까 동문 모임을 꾸리고 연락하고 유지하는 데는 역시 자매들이 한 수 위인데, 그 중에서도 가장 막내인 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 있는 경자(5/5/14)가 시간이며 식당이며 회비 등을 정하고 선배들은 그녀의 말에 따르기만 하면 됐다.
덕분에 오래 못 봤던 반가운 얼굴들이 광화문 한복판 내수동 다락방에서 함께했던 35-40년 전 이야기와 추억을 주거니 받으니 했고, 서로 근황을 나누면서 회포를 풀 수 있었다. 립 서비스일지도 모르지만, 이구동성으로 서로에게 했던 말은 "하나도 안 변했네~"였다. 20대 초반을 함께 보냈던 사이들인지라 서로에 대한 기억은 뚜렷했고, 간만에 나누는 정은 따스했다.
원래 이 시기, 그러니까 70년대 후반 내수동 대학부 부흥기의 동문들은 동년배인 성주 형과 정현 형을 중심으로 크게 두 축으로 나뉜다. 물론 이런 구분이 인간적이고 조금 생뚱맞을 수도 있지만, 크게 봐서 인격적인 감화를 끼쳤던 형과 성장에 박차를 가하면서 일을 벌이던 형으로 대략 그 성향을 나눌 수 있고(당연히 영향력의 범위는 달랐다), 후배들은 각자 그 성향이나 기질에 따라 관계 형성에 조금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성주 형은 교회 근처에 있던 생명의 말씀사 서점에서 근무하다가 합동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내수동교회 대학부와 고등부, CMF(누가회), 등대교회(윤종하 장로님이 목회하던), 할렐루야교회에서 사역하다가 볼티모어로 가서 벧엘교회를 거쳐 14년 전에 하늘문교회를 개척했다. 나와도 친하게 지냈던 재열이 누나와 결혼해 평훈, 강훈 쌍둥이를 낳았고, 둘째를 화영 자매 딸과 결혼시켜 대학부 출신이 첫 사돈이 되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형 부부의 건강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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