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원시장 할머니 비빔국수
Posted 2019. 9. 24.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시장 음식들이 주는 이미지는 대체로 싸고 푸짐하고 맛있다, 고 알고 있지만, 문제는 잘 안 가게 된다는 것이다. 차로 쉽게 갈 수 있고 쇼핑하기 편한 마트에 가다 보면 시장에 갈 일이 없어지게 마련이다. 종로3가역 앞에 악기 상가로 알려진 오래된 낙원상가가 있고, 그 지하에 낙원시장이 있는데, 여기도 식당이 몇 군데 있다. 번듯한 식당들은 아니고, 시장통에 있는 허름한 분식집 같은 푸드코트와 실내 포장마차 비슷한 분위기다.
막걸리와 파전 등 안주거리와 함께 이 식당들의 시그니처 메뉴는 국수다. 잔치국수, 비빔국수, 냉국수, 콩국수, 칼국수 등을 파는데, 다닥다닥 붙어 있는 예닐곱집이 공통적으로 하는 메뉴이다. 어떤 메뉴든 가게마다 같은 값인데, 국수의 양대봉 잔치국수가 2천5백원, 비빔국수는 3천5백원을 받는다. 이곳을 찾는 노장년층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매우 착한 가격이고, 누구나 쉽게 맛볼 수 있는 메뉴라는 말이다.
이 식당 얘기는 이 건물 5층에 있는 공익경영센터 김경수 대표에게서 두어 번 들었는데, 막상 갈 때마다 근처의 다른 식당에 데려가서 맛볼 기회는 없었다. 지난주 토요일 광화문에서 영화 보고 문득 생각이 나서 20여분 빌딩 숲을 걸어서 인사동 지나 찾아갔다. 저녁 시간이라 술 한 잔 하는 이들로 북적였는데, 빈 자리에 앉아 비빔국수를 시켰다. 할머니가 국수 삶고 스덴 바가지에 양념을 덜어 손으로 쓱쓱 비벼낸 다음 김가루와 오이를 푸짐하게 얹어 내 왔다.
긴 말이 필요 없겠다. 이런 건 일부러라도 가서 꼭 한 번 먹어주어야 한다. 국수 전문점들처럼 기교나 아양을 부리지 않아 편하게 먹을 수 있어 좋았다. 할머니 손으로 비벼 낸 국수는 기대했던 맛 그대로였다. 맛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고, 세거나 약하지도 않았다. 적절하게 매웠고 적당히 달았고, 쉴 틈 없이 입에 넣으면 씹지 않아도 술술 넘어갈 정도로 맛이 있었다. 고민이다. 이 지하식당 집집마다 비빔국수 맛을 보려면 몇 번은 더 가야 하겠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