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포교회
Posted 2011. 2. 28. 09:31, Filed under: I'm churching/교회 나들이
어제는 종합운동장 아시아선수촌 상가에 있는 남포교회 12시 예배를 드렸다. 결혼하고
분가한 다음다음해 학생시절부터 20년 가까이 다니던 모교회 내수동교회를 나와 두 번째
다녔던 교회다. 10년을 다니면서 둘의 30대를 보냈다.
분가한 다음다음해 학생시절부터 20년 가까이 다니던 모교회 내수동교회를 나와 두 번째
다녔던 교회다. 10년을 다니면서 둘의 30대를 보냈다.
우리는 이 교회를 걸어서 다녔다. 아이들을 품에 안고, 유모차에 싣고, 예배가 끝나면
공원 잔디밭에서 놀고, 꿈같은 시절을 보냈다. 하남으로 이사와서도 한동안 다니다가 아이들
주일학교 사정으로 아쉽지만 옮겨야 했다.
공원 잔디밭에서 놀고, 꿈같은 시절을 보냈다. 하남으로 이사와서도 한동안 다니다가 아이들
주일학교 사정으로 아쉽지만 옮겨야 했다.
작년 가을, 세 번째 다니던 교회에서 나와 여러 교회 나들이를 시작했을 때, 이 교회는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작은 비빌 언덕 가운데 하나였다. 특별히 활동하거나 관계를 맺었던
친밀한 교우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박영선 목사님 때문에 언제든 돌아가고픈 교회로 남아
있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는 작은 비빌 언덕 가운데 하나였다. 특별히 활동하거나 관계를 맺었던
친밀한 교우들이 있는 건 아니지만, 박영선 목사님 때문에 언제든 돌아가고픈 교회로 남아
있었다.
박 목사님을 처음 알게 된 건, 1984-5년 내수동교회 대학부 엘더 시절 수련회 강사로
두어 번 모시면서였다. 나와 나를 따르던 후배들은 이분의 거침없는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하나님의 열심과 설복 때문에라도 기독교가 가난한 종교가 아니라는데 우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두어 번 모시면서였다. 나와 나를 따르던 후배들은 이분의 거침없는 매력에 흠뻑 빠졌다.
하나님의 열심과 설복 때문에라도 기독교가 가난한 종교가 아니라는데 우리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박 목사님은 올해 65세가 되셨는데, 우리가 다닐 때, 그러니까 이분의 전성기에 비해 많이
늙어보였다. 특유의 카랑카랑함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회중의 눈과 귀를 집중케 하는 매력은
여전했다.
늙어보였다. 특유의 카랑카랑함은 사라졌지만, 그래도 회중의 눈과 귀를 집중케 하는 매력은
여전했다.
예배는 보수적 장로교회 예배순서에 따라 시종 차분하게 드려졌다. 큰 교회이면서도
성경구절이나 찬송가사를 스크린에 띄우지 않고 일일이 찾아보게 하는 게 신기했다. 박 목사님의
유머감각 하나. 우리가 보기엔 당신이 졸게 만든 게 분명한데도 오히려 교회 와서 조는 사람들이
있다며 가볍게 조크를 던진다. 이 양반 지론은, 교회 와서 조는 것도 실력이란다.^^
성경구절이나 찬송가사를 스크린에 띄우지 않고 일일이 찾아보게 하는 게 신기했다. 박 목사님의
유머감각 하나. 우리가 보기엔 당신이 졸게 만든 게 분명한데도 오히려 교회 와서 조는 사람들이
있다며 가볍게 조크를 던진다. 이 양반 지론은, 교회 와서 조는 것도 실력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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