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죽
Posted 2021. 5. 20.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百味百想
죽은 웬만하면 거의 먹지 않는 음식이었다. 베이비 붐 세대지만 다행히 배를 곯았던 기억은 없는데, 밥 대신 죽을 먹었던 기억도 안 난다. 동짓날 팥죽도 어른들은 즐겨 드셨지만, 눈에 들어올 리가 없었다. 시간이 흘러 죽 전문점에서 가끔 사 먹는 죽도 이렇다 땡기지 않고, 제주도에 갔을 때 전복죽도 뭔 맛인가 했더랬다.
입맛도 변한다고, 시나브로 죽도 맛있는 음식이란 걸 알게 됐다. 우리 동네 상가 지하 죽집에서 동지 팥죽이나 약간 몸이 안 좋을 때 야채죽을 시켜 먹곤 하는데, 맛이 은근히 괜찮다. 둘 다 6천원밖에 안 받고, 게다가 한 그릇을 시켜도 나무 채반에 정성스레 배달해 주어서 미안해서 두 그릇씩 시켜 먹곤 한다.
얼마 전 치과에 다녀 온 아내가 죽을 먹자길래 야채죽과 팥죽을 하나씩 시켜 두 끼에 나눠 먹었다. 죽도 맛있지만 조그만 종지에 담은 동치미가 달달하고 시원했다. 딱히 먹고 싶은 게 생각나지 않을 때, 가볍게 한그릇 시켜 먹을 수 있으니 이 또한 죽여주는, 아니 죽이 주는 작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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