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머릿돌
Posted 2025. 1. 26. 00:00, Filed under: I'm churching/교회 나들이주춧돌 또는 머릿돌은 원래 건물의 기초를 이루고 중심이 되는 돌로 눈에 띄진 않는데, 건물을 다 짓고 그 중심 또는 기원을 밝히는 의미로 눈에 띄게 새겨 놓는 돌 또는 돌판을 이르기도 한다. 한자는 초석을 놓는다는 의미로 정초(定礎)라 쓰기도 하는데, 과시라도 하듯 커다란 돌판에 번듯하게 새긴 것들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살짝 숨어 있던 것들이 종종 눈길을 끈다.
작년에 대학로에 갔다가 이화장 가는 길에 성공회 교회를 지나는데, 정초석이 보였다. 1959년이면 내가 태어난 해인데, 그 당시 이렇게 온통 한글로 새겨놓았다는 게 특별해 보였다. 군대 차트 글자 비슷한 오래되고 낯선 글자 스타일(폰트)도 인상적이었고, 성공회의 수장인 그 당시 캔터베리 대주교 이름도 알 수 있었다. 새로 지은 듯한 교회당은 크진 않았는데, 나름 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고 있는 것 같았다.
얼마 전 광화문에 수프 먹으러 갔다가 나오는 길에 이곳으로 옮긴 지 몇 년 안 된 향린교회당에서 설립 비전이랄 수 있는 교회 정체성 네 가지를 새겨 놓은 수수한 머릿돌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요즘 이 땅의 교회들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독특한 개념들이었다. 십중팔구 이런 깐깐해 보이는 토양에서 교회 성장은 어려웠겠지만, 그래도 새로 옮긴 곳에서 이런 정신을 포기하지 않고 표방하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겠다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