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구름산에 오르다
Posted 2011. 6. 13. 00:00, Filed under: I'm wandering/I'm a pedestrian금요일 3시. 편집부가 7월호 작업을 마치고 충무로로 필름교정을 보러
갔다. 전날 야근으로 몸이 늘어져 오랫동안 미뤄두었던 사무실 근처의 두 산,
군포 수리산과 의왕 백운산 가운데 먼저 백운산을 갈 요량으로 조금 일찍
사무실을 나와 백운호수 방향으로 차를 몰았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에서 가장 흔한 산 중 하나는 백운산(White
Cloud Mountain)일 것이다. 산과 흰 구름은 뗄래야 뗄 수가 없기 때문에
이름이나 별명으로 흰구름산은 썩 잘 어울린다.
전국에 백운산이란 이름이 몇 개는 될 터인데, 의왕에도 있어 두세 해
전에 그 초입까지 가본 적이 있다. 그땐 백운사 방면으로 갔는데,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백운호수 쪽에서도 올라가는 길이 있다.
백운호숫가에서 제일 유명한 파스타집 올라 건너편 한정식집 뜰안채
방면으로 난 길을 따라 올라가 주차한 다음 산행을 시작했다. 초입부터
느낌이 좋다. 잘 단장된 산책로가 10여 분 펼쳐지고, 그 다음은 30분 남짓
오래 전부터 있었을 산길이 전개됐다.
다시 평평한 길을 10여 분 정도 걸으면 정상. 주차하고 한 시간 남짓
걸렸으니 그리 어렵지 않게 오를 수 있는 산이었다. 그래도 높이는 587m.
마침 백운사 방면에서 올라온 이들에게 물으니, 그 쪽으로도 한 시간이면
올 수 있다고 한다. 정상에 오르면 혹시 백운호수가 보일까 기대했는데,
봉우리들에 가려서인지 안 보였다.
정상부를 둘러보는데 표지판 하단에 용인시라고 붙어 있다. 아마 의왕시와
용인시 경계쯤 되는 것 같았다. 백운산에서 백운호수 방향으로 가면 나오는
바라산까지 2.2km니, 조금 일찍 왔으면 거기까지 갔다 내려갈 수도 있었겠다.
진행방향으로 계속 가면 수원 광교산도 그리 멀지 않은 것 같았다. 둘 다
조만간 한 번씩 가 보고 싶다.
등산로 안내판을 보니, 백운산은 김포에서 안성까지 한남정맥을 이루는
13구간 가운데 하나였다. 함백산, 구봉산 같은 산 이름은 웬지 꽤 있어 보인다.
매니아들 가운데는 전 구간을 종주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여름이라 날이 길어지긴 했어도 비가 올 것 같아 우산을 지팡이 삼아
왔는데, 쓸 일은 없었다. 그래도 길치에 초행길이고 해서 무리하지 않고
올라온 길을 되돌아 내려오기 시작했다.
나무 터널이 시작되는 부분을 통과할 때면 묘한 기분이 든다. 빛에서
어둠 속으로, 깊은 숲을 가로지른다는 생각과 앞에 뭐가 있을지 모른다는
경계 본능, 길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두려움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했다.
저 앞에서 누군가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과, 이 정적과 고요를 아무도
깨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짧은 순간에 교차한다.
결국 중간에 올라왔던 길을 찾지 못하고 바라산 가는 길 중간에 백운호수
표지가 있어 빙 둘러서 내려왔다. 음식점들이 눈에 띄는 걸로 봐 다른 골목이긴
해도 근처인 것 같았다. 덕분에 장미꽃 아치가 소박한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집과 화분에 옮겨 심은 보리도 구경할 수 있었으니, 망외의 소득이었다.
뜰안채 방향으로 내려와야 했는데, 안동국시집 방향이다. 다행히 둘 다
가본 집이라 안심이다. 500m쯤 걸어 원래 골목을 찾았는데, 문제는 골목길
한참 위에 주차해 둔 터라 다시 타박타박 한참을 걸어야 했다.
차로 가는 등산은 이게 안 좋다. 버스나 지하철로 가면 그저 발길 닿는
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몸이 허락하는 한 여기저기 다닐 수 있지만, 차를
갖고 가면 접근은 쉬운 대신 꼭 되돌아와야 한다는 한계가 있다. 그래도
또 하나의 새로운 산을 올랐다는 즐거움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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