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서 먹은것들 2 - 해뜨는집 국수
Posted 2011. 11. 7. 00:00, Filed under: I'm traveling/놀멍 쉬멍 걸으멍
제주올레7코스의 풍광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걷다가 첫 번째 포구를 만났다. 외돌개에서 빨리 걸었으면 한 시간 정도 되는 지점인데, 우린 사진 찍고, 중간에 참소라 먹고 하다 보니 두 시간쯤 지나 있었다. 가을 한낮 월드컵경기장 부근에 있는 법환포구는 한산했다.
쉼터 이름이 그런 건지, 슬로건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놀멍 걸으멍 카페 메뉴판이 요즘 흔치 않은 판화 글씨로 걸려 있다. 메뉴 구성으로 봐서 여름철에 인기였을 것 같다. 여름철에 이 길을 걸었다면 이름 때문에라도 아이스꿀물 한 잔 시켜 맛봤을 것이다.
올레길에서 우리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제주음식으로 고른 건 법환포구의 국수였다. 이름도 재미있는데다가 폰트도 날렵해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해뜨는집 국수. 이번 여행을 기획한 직원이 7코스를 다녀 온 블로그들에서 봐 두었던 맛집들 가운데 하나다.
낯선 타지에서 식당을 고를 땐 웬지 식당 이름이나 외관을 보게 되는데, 건물을 새로 지은 건지, 아니면 새로 단장한 건지 모르겠지만 산뜻한 느낌을 주는 식당이다. 50대 후반쯤 돼 보이는 주인 내외가 주문과 주방을 맡아 하고 있었다. 입구 계단도 예쁘고, 자리에 앉으면 제주 해변과 바다가 시원하게 보인다.
왜 제주까지 와서 국수를 먹어야 하느냐 하면, 다른 데선 먹어보기 힘든 고기국수를 맛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 집은 색깔 있는 것 둘, 맑은 것을 둘 내는데, 식당 앞에 세워 둔 메뉴판에 각 메뉴의 재료와 특성을 한 줄씩 적어 놨다. 우린 매콤 비빔국수 셋, 맛좋은 고기국수 셋에 해물파전 하나를 시켰다. 가격이 전반적으로 착하지 않은가.
국수가 삶아 나오긴 전에 평범해 보이는 반찬 세 가지가 먼저 나왔는데, 시장이 반찬인 우리는 젓가락질을 분주하게 해 댔다. 콩나물이 심심한 게 맛있었다. 시커매 보이는 건 해초류인가 했더니 맛을 보니 제주 묵은지였다. 아주 짜지 않으면서도 뜨거운 밥이 있으면 한 공기 뚝딱하겠다.
반찬을 탐하는 걸 본 건지, 아니면 원래 서빙 순서가 그래선지 모르겠지만, 주인 아저씨가 인터벌을 두고 하나를 더 내왔는데, 멸치 무침이라 해도 무방하고 멸치 김치라 불러도 괜찮을 멸치 반찬이었다. 제법 크고 통통한 멸치는 간도 적당한 게 씹히는 맛이 독특했다. 음~ 반찬이 이 정도면 메인으로 나올 국수맛도 기대해 볼 만 하겠다.
로즈매리가 시킨 비빔국수는 이름처럼 아주 맵진 않았는데, 비주얼 상으로는 다른 비빔국수와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약한 향신료 맛이 나는 게 나쁘지 않았다. 비빔국수는 면발의 굵기나 쫄깃도와 함께 다 먹은 다음 비빔 국물이 남는 것과 남지 않는 것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집 국수는 국물이 거의 남지 않도록 되지게 비볐다. 국수 메뉴만으로 이 포구에서 이름을 내려면 뭔가 독특한 비법이 있을 것 같은데, 주방을 맡은 아주머니의 손끝이 예사롭지 않은 게 분명했다.
두둥~ 내가 시킨 고기국수가 나왔다. 사실 육지 사람들이 섬 음식에 적응하긴 쉽지 않다. 제주의 명물 고기국수도 맛 보곤 싶었지만, 맛 궁합이 맞지 않으면 어쩌나 내심 은근 긴장하고 있었는데, 일단 비주얼 상으론 우동 삘이 나는 게 먹음직해 보인다.
고기는 국수 위에 보이는 것 말고도 얼추 십여 점은 됐는데, 쫄깃쫄깃한 제주 돼지였다. 고기국수를 시키면서 저으기 염려 되는 지점은, 국물이 아주 진하거나 도시인의 입맛과 영 안 맞으면 어떻게 하나 하는 건데, 다행히 국물도 심히 느끼하지 않았다.
식사를 마치고 주인 아주머니에게 맛있다며 인사했더니, 두 가지 비법을 일러주셨다. 손님이 아니라 식구들이 먹는 음식처럼 만든다는 것 하나와, 국물의 느끼함을 줄이려고 통후추와 월계수잎 그리고 소주를 약간 섞는다는 진솔한 비법을 일러주셨다.
비빔국수와 고기국수를 열심히 먹고 있는데, 주인 아저씨가 국물 담은 대접을 내 오셨다. 여섯 중에 하나 둘은 멸치국수를 시킬 줄 알았는데 안 시켜 그 맛은 못 보나 했는데, 이심전심 눈밝고 손대접 잘하는 주인이 파숑숑 몇치국물 육수를 한 대접 내온 것이다. 비빔국수에 국물로 나오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난 이렇게 해석하기로 했다.^^
멸치육수는 시원했다. 거기다가 제주멸치로 끓였다고 생각하니 더 시원했다. 아니, 그냥 시원했다기보다는 멸치의 비린맛과 쓴맛 없이 고소하면서 맑은 맛이 그냥 이 멸치국물만 한 대접 들이켜도 좋겠단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여섯이서 파전 포함해 국수 여섯 그릇에 3만3천원 냈으니, 맛과 값에서 올레길 첫 식사 미션은 대성공이다. 근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국수를 기다리면서, 국수가락을 넘기면서 내 눈에 계속 들어온 건 원두커피 머신이었다. 그것도 이런 대중식당에는 안 어울려 보이는 약간 있어 보이는 기계였다.
당연히 봉지 원두도 있는데, 국수를 내면서 이렇게까지 하면 남는 게 뭐 있을까 해서 오지랖 넓은 서 기자, 다시 주인 아주머니에게 말을 섞으니, 돌아 온 대답이 걸작이다. 일하다 보면 하루에 커피를 열 잔 넘게 마시기도 하는데, 가족들 마시는 거 손님들에게도 대접하자는 것 하나란다. 이 집의 상인정신은 장인정신이었다.
포만감을 느끼며 식후에 들린 해우소에서 이 집의 마지막 서비스를 받았다. 쓰다 남은 비누를 넉넉히 넣어 냄새를 없애고 있었다. 법환포구의 해뜨는집 국수는 메뉴 구성과 맛, 가격대, 분위기, 서비스 정신 합해서 5점 만점에 4.7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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